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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Jun 15. 2017

제목이 악녀인 이유

영화 <악녀>

 이 영화로 꽤 한국 극장가가 시끌 시끌 했다. 최근 '아는 형님'이라는 예능에 김옥빈이 나와서 홍보도 한번 더 했었다. 1인칭 액션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액션을 시도했다, 여자판 아저씨다 이런 이야기들도 종종 들리곤 했다. 귀가 간지러워서, 그리고 또 계속 샘솟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관을 들렸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두 배우 김옥빈씨와 신하균씨 그리고 최근 매력적인 패션으로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김서형씨 까지 배우 진도 소문만큼 뜨거웠다. 꽤 긴 러닝 타임 속에서 나는 영화가 주고자 하는 바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 마지막이 돼서야 비로소 나는 왜 제목이 '악녀' 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

 당신은 이 영화 어떻게 보셨는가?



 몇 달 전에 <하드코어 헨리>라고 하는 1인칭 위주의 액션 영화가 개봉했었다. 잠깐의 1인칭 시점 전환은 좋지만 내내 1인칭이면 적잖이 멀미가 나겠다 싶어서 아직 보지는 못했다. 다만 중간중간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면서 이런 방식도 멀미만 안 난다면 좋겠다 싶었다. 이 영화 <악녀> 역시 시작부터 1인칭 시점으로 달려나간다.

 배우의 거친 숨소리와 청불이라는 등급 판정에 걸맞은 잔혹한 풍경은 처음부터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약간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전체적인 샷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모르겠다, 어디 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1인칭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접하지 못하기도 했고 표현이나 연출에서 어색한 점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액션들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배우들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가 보였고 스턴트 맨들도, 무술팀도 정말 고생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 액션을 하고, 버스 안에서 뒹굴고 이 정도면 열일 했다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액션은 이렇게 접어 놓고 다음 배우들의 연기력? 

 누가 감히 지적하겠는가? 애초에 이런 몽환적인 연기는 <박쥐> 의 김옥빈을 봤다면 알다시피 그녀가 적격이다. 오히려 웃는 모습이 어색할 정도로 영화 속에서 숙희(김옥빈)은 극악의 우울한 삶을 살아간다. 잠깐의 행복도 허락할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신하균은 어떤가? 그가 악역을 했다 하면 최악의 캐릭터가 탄생하곤 한다. 또한 정말 젠틀하고 강인한 권 부장 역을 맡은 김서형도 그녀의 차가운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 모든 조합 속에서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스토리의 전개였다. 
  
 누군가 이 영화가 여자판 아저씨라고 하기에 비교해 보았다. 아저씨는 단 하나의 악당이 있다. 또한 그 악당의 이미지는 악랄하고 비열하며 누가 봐도 잔인무도하다. 전당포 아저씨는 반면에 슬픈 비밀을 안고 있으며 그에게는 지키지 못 했다는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그 앞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소통해주는 존재 어린 소녀가 나타나고 그녀가 악당에게 잡혀가면서 그녀를 지켜내려는 전당포 아저씨의 줄기찬 노력이 이어진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영화에 온전히 몰입한다. (원빈의 미모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 <악녀>는 너무나 많은 인물들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꼬아 놓고 너무나 처참하게 죽인다.  그 속에서 얻는 것이라고는 숙희에 대한 동정과 안타까움 뿐 중상(신하균)도 완벽히 악하지 못하다. 권 부장도 온전히 악하지 못했다. 또한 숙희도 온전히 악하지 못하다. 인물들은 죽어나가는데 그것에 몰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만 펼쳐져서 도저히 이 영화가 뭘 던지고 싶었는지 캐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숙희의 미소를 보고 깨달았다. 

 영화의 2시간 그 긴 러닝타임 동안 전개된 이야기들은 모두 마지막 숙희의 미소를 위해서였다. 또한 이 영화의 제목도 그 마지막 순간 미소를 통해서 완성된다. 그녀는 비로소 '악녀'가 된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존재 이유가 없던 숙희에게 처음으로 삶에 희망이 되었던 '중상' 그다음의 이유였던 그녀의 딸 '은혜' 마지막 이유였던 남편 '현수'(성중) 그 모든 연결점이 끊어져 버리고 나서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상태. 그저 살육만이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상태. 자아는 갈라져 없어졌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죽음을 반기는 '악녀'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영화의 모든 과정은 숙희가 악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나는 아직도 그녀의 마지막 웃음을 기억한다. 또한 동시에 소름이 돋는다. 마치 누군가 장난으로 귀신 사진을 띄워놓은 모니터를 보았던 것 마냥 선명하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람들이 아무리 별로라고 한다 할지라도 마지막 숙희의 웃음에서 모든 불만을 털어버렸다. 그것에 러닝타임에 모아왔던 모든 기분을 뭉치고 뭉쳐 폭발시켜버린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충분히 아니, 과히도 잔인했고 전개는 몰입이 되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력에 비해서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다소 약했지만 볼만한 영화였고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자판 아저씨하고 하긴 약한 부분이 많지만 그저 하나의 영화 '악녀'로서 괜찮은 작품이었다. 

feat. 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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