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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Jun 18. 2017

각자의 죄를 씻어내는 과정

영화 <하루>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보지 말아 주세요.

 이 영화 포스터에 대놓고 '끝나지 않는 지옥'이라고 적혀 있다. 내가 들었던 괴담 중에서 똑같은 사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야기가 제일 소름 돋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원하는 즐거운 시간이 계속 반복된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 끔찍함을 깨닫기 마련이다. 반복된다는 것은 결국 지옥일 수밖에 없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라는 영화가 번뜩 떠올랐다. 외계의 침공 속에서 죽으면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 깨어나는 주인공. 그는 끝도 없는 죽음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아 나간다. 내가 그 영화를 리뷰하면서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설정을 빠른 전개와 흥미로운 소재로 잘 풀어 냈다고 했던 것 같다. 

  <하루> 역시 마찬가지다. 잘못 풀어냈다간 지루하기 짝이 없을 소재로 짧은 러닝타임과 독특한 인물 관계 배치 덕분에 너무나 깔끔하게 잘 끌어냈다. 물론 마무리가 조금 약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영화 속 배우들의 열연으로 충분히 커버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 영화 어떻게 보았는가?



 하나의 사건 현장 속에 얽혀있는 인물들은 계속해서 일관된 시간에 묶여 돌아간다.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같은 시간을 반복하는 주인공 준영(김명민)과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 마찬가지로 사력을 다하는 민철(변요한) 그 내막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서 스토리는 흥미를 더해간다. 

 영화 내내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는 변요한 씨가 한편으로는 많이 안타까웠다. 진짜 영화 찍다가 목 다 상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울고, 울먹이고 소리 지르고 달려들고 화내고, 아주 복합적으로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김명민 씨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김명민 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점점 악화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괴로워했다. 

 이 두 배우와 더불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 유재명 씨도 기억이 많이 남는다. 포스터에서도 유재명 씨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분위기 전환과 핵심적 메시지는 유재명 씨가 전부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죄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는 어떻게 보면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죄라는 것에 함께 매여 있는 세 인물은 어느 순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그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의미 없는 기적은 없다는 듯 그렇게 이 묘한 '하루'를 반복되기 시작한다. 

 준영과 민철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경험에 대해서 공유하며 또한 둘이서 막아야만 할 인물인 강식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극적으로 전개된다. 준영과 민철은 강식에게 있어서 가해자였다. 강식은 아버지로서 반드시 복수를 해야만 했다. 

 준영이 죽어가는 강식을 붙잡아 놓고 자신의 죄를 사죄하며 어떻게든 강식을 살려놓고자 한다. 그는 강식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 아냐. 아니, 아버지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거야!" 

 준영의 말에 강식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렇지, 그러나 지금 당신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준영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강식이 의식불명일 때에 강식의 아들 하루의 심장을 딸에게 이식했던 준영. 또 강식과 하루가 교통사고가 나게 한 원인을 제공하고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민철. 3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들에게 잊혔을지언정 강식에게는 잊힐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죄였고 강식은 그 스스로 그들의 죄를 심판하고자 했다. 준영의 딸과 민철의 아내를 죽임으로써 말이다. 



 누구도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강식이 피해자인 것 같지만 그도 어린아이와 여자를 죽이고자 했다. 적어도 그 반복되는 하루 동안 수십 번을 죽이고 또 죽였다. 민철과 준영 역시 죄인이다. 그 사실 역시 명백하다. 이 죄 많은 세 명의 사람이 반복되는 지옥 속에서 결론적으로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끝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루의 의미는 그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딸과 아내를 살리라고 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옳지 못한 선택을 한 강식의 마음을 돌리고 그를 치유하고 자신들의 죄를 마주하는 것. 그것을 위한 하루였다. 

 한편으로 지루할 수도 있는 반복되는 하루, 그 소재 속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박진감 넘치게 진행된 영화 <하루> 2시간이 넘어가 롱런하는 영화들 보다 깔끔하고 맛깔나게 마무리되었던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드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만큼 내부에서 가지고 있던 메시지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력은 두말할 것 없었다. 꼭 한번 챙겨 봤으면 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feat.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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