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ovi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an Jun 20. 2017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저

 나는 늘 의사라는 직업을 존경해 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의사라는 직업을 존경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 속에서 속물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밝히는 의사들도 종종 보이곤 하지만 다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직업에 뛰어들어 삶과 죽음 가운데서 환자를 끄집어 내는 위인들도 많다. 그것이 의사이고 그 업의 본질이다. 

 이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 역시 의사였다. 신경외과를 전공했고 그의 기나긴 레지던트 생활도 거의 막바지였다. 그의 삶 3분의 1을 미래를 위해 던져놓았다.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해 내며 그는 학계에서 인정받고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안달이 나있는 앞길이 창창한 의사였다. 적어도 그 스스로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직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예외가 없다. 그의 열정적인 삶에서도 죽음은 가차 없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암이라고 하는 종양 덩어리는 그의 폐에서 시작됐다.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세상 모든 것들 속에서도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내가 있었고 아내는 끝까지 그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사랑의 끝나가는 어느 날 암이 그들의 사랑을 다시 응집 시켜 주었다. 그는 담담히 그의 일대기를 <숨결이 바람 될 때>를 통해서 써 내려갔다. 그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 그리고 암에 걸린 순간과 그 끝까지. 차마 힘이 다해 적지 못한 부분은 그의 아내 루시가 마저 적어 주었다. 그의 삶은 이 책 한 권 속에 전부 들어있고 그의 의사로서 철학과 삶의 방향 그가 만들어 냈던 미래와 그가 사랑한 딸 케이디가 담겨 있다. 

 책은 마치 그의 생명과 같았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촛농이 녹아내리는 양초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의 생명도 다해 가는 느낌이었다. 결말을 알고 있었고 그의 삶을 읽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나 보다. 다른 때보다 책장은 더디게 넘어갔다. 그의 표현력과 아름다운 묘사들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내 손안에 그의 심장이 붙들려 있는 것 같았고 책장 한 장에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때론 역동적으로, 때론 전율이 돋게끔, 때론 잔잔하게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의 사상과 의사로서의 마음가짐, 또 의사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내적, 외적 갈등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게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전반부와는 너무도 상반된 그의 모습으로 나아갔다.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다시 극한의 레지던트로 뛰어든 그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소름 돋게 보았던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 모르고 함께 할 인생을 계획했다. " - 155page

 삶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웃기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발악하지만 생리학적으로 봤을 때 인간은 엄연히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 열차나 다름없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는 죽을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 영화처럼 죽음은 친절하지 않다. 예고편이라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 스스로도 내 미래에 죽음이라는 단어는 없다. 한편에 먼지만 수북이 쌓인 채 방치되어 있다. 그것이 아무리 나를 노려본들 나는 코웃음뿐이다. '네깟 게 오겠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창대하고 아름다운 계획을 세운다. 그것을 이루리라 다짐한다. 미래에 대한 플랜 A, B, C는 있어도 죽음에 대한 플랜 A, B, C는 없다. 폴의 인생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도 미래에 대한 계획과 그것을 실현하리라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든 무너질 가능성을 가진 인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을 때 비로소 죽음의 공포가 몸서리 쳐질 만큼 성큼 다가왔다. 

 나는 오늘 이 책을 덮으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을 사랑했노라 전하기로 다짐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들에게 더 이상 상처 주지 않으며 보듬자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죽음의 플랜을 짜진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앞날에 죽음이라는 부정어를 두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이번을 계기로 그것을 충분히 고려하는 삶을 살아가겠지만 그것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면서 지금부터라도 열렬히 다가가고자 다짐했다. 

 
"나는 가슴이 미어져 침대로 올라갔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으로 함께 누웠다."

 마지막, 폴이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가 호흡을 결정하며 아내 루시는 그의 침대로 올라간다. 나는 이 장면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라 울컥하고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수십번 때렸다. 그만큼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웠고 폴의 믿음과 루시의 헌신은 대단했다. 한 권의 책으로 큰 감동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도 얻었고 실천해 나갈 방법도 알아냈다. 의사들이 보면 더할 나위 없거니와 일반인들이 보아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정말 좋은 책이 아닐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죄를 씻어내는 과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