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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영화 <남한산성>

by Logun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다면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한산성.

우리에게는 조선의 굴욕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전도의 굴욕, 삼배구고두. 학생 시절 시험 출제 거의 80% 이상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유명한 문장. 인조 시절 우리나라의 국왕이 청나라의 황제에게 항복의 예를 갖추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이 짧은 문장 안에, 어쩌면 학생 시절 점수를 위해 외웠던 이 문장 안에 담긴 그 시절 그들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을 이 영화에서 온전히 담고 있다.

고증? 실질적인 반영?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내 역사적 지식은 그것들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나 이것 하나만은 알겠다. 결국 약자는 강자에게 집어 삼켜지는 것이 그 시절의 이치였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로 응집되지 못한 국가에게는 그 미래가 없다는 것을.

함께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 영화 어떻게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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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7세기 초반 병자호란이 발발하면서 인조는 또다시 강화도로 도성을 버린 채 피난을 간다. 그러나 이미 정묘호란을 통해서 시행착오를 겪은 청은 강화도로 피난 가는 인조의 행렬을 중도에 끊어버리고 어쩔 수 없이 인조는 남한산성에 몸을 숨긴 채 결사 항전에 들어간다.

왕의 입장에서는 결사 항전이었으나 백성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약탈과 살인이 행해지는 최악의 순간들이었다. 도성을 버린 왕은 나라는 버린 임금에 불과했고 정묘호란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한반도에는 또 한 번 지옥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똘똘 뭉쳐서 하나의 뜻으로 국정을 펼쳐도 모자랄 판에 신하들은 눈치 보기에 바빴고 왕은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 명의 신하가 서 있다.

오랑캐에 목숨을 조아리는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이 났다는 김상헌과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죽음보다는 삶을 붙잡으며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최명길

그 두 신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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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은 적진에 지속적으로 접촉하여 대화와 화친의 길을 도모하나 김상헌은 오랑캐와는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신조를 고집한다. 왕으로서 명과의 대의를 어기며 조선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오랑캐라고 하대했던 집단을 황제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매력적인 관점은 이곳에 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 두 명의 대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으로서 바라봤던 <남한산성>의 매력은 이 두 명의 온전한 대립에 있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봤던 대하드라마에서는 매번 대립되는 두 집단이 나왔고 그들은 서로를 미친 듯이 물어뜯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명백히 대립하는 이 두 명이 서로를 대하는 자세는 그렇지 않다.

과묵하게 서로를 바라보나, 어전에서는 서로를 비방하지 않으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한 반론한다. 그것이 묵직한 분위기에서 마치 살쾡이가 머리를 물어뜯는 것 마냥 날카롭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할퀴지도 않았다. 그 핵심에는 오로지 이 하나의 단어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선”

최명길에게도, 김상헌에게도 작품 속에서 온전히 나라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신하들은 그저 대세와 분위기에 따라서 그 흐름에 집중할 뿐 왕이 어찌 되던 나라가 어찌 되던 개의치 않았다. 그저 목숨이 중했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이 전란에서 한 번의 이목을 받아 전란이 끝났을 때 한몫 두둑이 챙기거나 정계에서 굳건해지는 것이 중했다.

그러나 최명길과 김상헌은 나라와 왕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지언정 왕에 대한 직언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목을 베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최명길은 몇 번을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적진을 다녀왔고 김상헌은 내 외부로 방어와 격서를 보내는데 집중하며 이 전란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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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지루하다. 정말. 지루하다.

뚜렷한 전투 장면도, 긴박함도 없다. 그저 인조와 김상헌과 최명길과의 대화, 그리고 입장 차이, 대립이 있을 뿐이다. 또한 그 속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이 있고, 오해받는 충신이 있으며 그 와중에도 동포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기도 한다. 지극히 조용하고 잠잠하다. 고요하며 아련하다. 위엄이 없는 왕과 간악한 신하들과 두 명의 충신과 고통의 신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유 있는 고요이며 그것은 이유 있는 연출이다.
남한산성이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영화는 작품으로서 담아내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담아냈다. 우리는 영화를 고를 때 흥미와 재미, 짜릿함, 유쾌함을 보고 고르곤 한다. 물론 배우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작품이나, 연출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할 것이다. 추석이기에 유쾌, 상쾌, 통쾌를 원했다면 과감하게 이 영화는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당신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바란다면, 그 적막함 속에서 영화에서 던지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기를 바란다면 비록 긴 러닝 타임일지라도 몰입해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그들이 했던 선택과 너무도 나약했던 그 나라와 너무도 용기 없었던 그 왕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다른 우리의 현재를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역사는 반복되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이 영화를 보면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의 가슴속에는 어떤 남한산성이 있는가?
우리는 어떤 남한산성 속에 고립되어 있는가?
삶인가, 죽음인가. 어떤 해답을 가져야 할까.

feat. 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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