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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Sep 22. 2017

이제는 우리도 함께 말합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전반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을 미리 아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I CAN SPEAK'

 누군가 언뜻 포스터만 본다면 어떤 할머니의 좌충우돌 영어 공부 일기 같은 느낌이다. 호박고구마로 인지도 한 번에 끌어내고 이제는 국민 할머니의 대열에 서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 배우 나문희 씨와 최근 영화 <박열>에서 민족 열사로, '조선의 개새끼'라는 별칭까지 얻어 가면서 연기력을 뽐냈던 이제훈 씨가 합을 맞췄다. 두 사람의 이미지가 이 영화의 첫인상을 그저, 밝은 유쾌한 느낌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아이 캔 스피크
 참, 쉬운 문장이자 쉬운 단어이고 쉬운 뜻이다.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이 쉬운 단어가, 문장이, 뜻이 나는 그렇게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화의 중반부가 지나고 나서 내가 느낀 충격은 그 어떤 반전영화보다 더 크게 다가왔고 그것은 서서히 증오로 바뀌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다. 

 당신은 이 영화 어떻게 보았는가?



 구청의 소문난 '도깨비 할머니' 구청의 역사와 함께 끝도 없는 민원 요청으로 구청에서 할머니가 떴다 하면 민원 담당 공무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피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할머니를 처음 대면하게 된 박주임은 구청에 전입 온 경력 있는 9급 공무원이자 노련하고 욕심 있는 남자다. 

 일명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 씨는 철거 예정인 상가를 살리기 위해, 한편으로는 자신의 터전에서 불법적인 행위들을 해소 시키기 위해 나날이 동분 서주하고 '박주임'은 그런 할머니를 귀찮게 여긴다. 할머니는 영어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가르치는 배움의 속도가 할머니에겐 너무 빨랐고 우연히 박주임의 영어실력을 본 할머니는 그에게 영어 공부를 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박주임이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자신의 남동생이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종종 얻어먹는 것을 보고 마음의 동요가 일어 할머니를 도와 영어공부를 시켜주게 된다. 

 

 할머니는 사실 오래전에 헤어진 남동생이 미국 LA에 있기에 영어에 목적이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도 짧은 영어 실력이 늘 말문을 막았다. 박주임도 어렸을 적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3 동생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여 공무원을 길을 걸었던 순탄치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의 아픔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나날이 할머니의 영어 실력은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박주임이 제안했던 형식상의 겉치레를 위한 상가 철거 소송이 할머니에게 들키게 되고 박주임도 할머니의 남동생이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격분한 감정과 함께 할머니께 전달하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할머니는 영어를 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사실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였다. 세상의 눈을 피해 그동안 숨겨왔다. 부모에게도 모욕적인 말들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에게 한 번도 고생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할머니는 버림받았다.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닌데도 죄인처럼 그 사실을 숨긴 채 그 험난한 세월을 살아야 했다. 할머니에겐 '정심'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함께 위안부 그 비극적인 세계에서 버팀목이 되었지만 나이가 들고 위안부 피해를 일선에서 알리던 그 친구가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자 할머니는 선택을 해야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칫 잘못 번역될 수 있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서 전달 할 수 있어야 했다. 할머니는 용기를 냈다. 할머니는 말했다. 그제야 말할 수 있었다. 

'I CAN SPEAK'

 할머니의 사실을 늦게 안 박주임은 할머니를 일선에서 돕는다. 구청도, 상가 사람들도 할머니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들의 힘으로 이겨내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당당히 고발했다. 그 어떤 연설가보다 더 감동적인 말과 깊이 있는 목소리로, 그리고 영어로 말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2007년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곳에서 위안부라는 일본의 죄를 만 천하에 고발했고 떳떳이 그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에 정식적인 사과는 받지 못했다. 아직도. 아직도 말이다.



 할머니에게 박주임은 늘 물었다.

 'How are you' 

 할머니는 늘 대답해 줬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과연 할머니는 정말, 괜찮으실까. 그 시절, 그 험난한 삶. 고통들을 그대로 몸 안에, 가슴 안에 품고 일생을 사셨던 할머니는 괜찮으실까? 씻을 때 몸에 남겨진 상처들을 마주하면서 할머니는 괜찮았을까? 동네 어린 소녀들이 이쁘장한 교복을 입고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는 괜찮았을까? 사람들의 손길에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할머니는 괜찮았을까? 

  'I am sorry'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후대에 큰 짐은 짊어지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당당히 외치던 우리 할머니. 
 그리고 그 한마디가 그렇게나 어려운 그 나라. 

  할머니들은 용기를 내셨다. 숨어 계셨던 그 나날들 속에서 벗어나 당당히 세상에 그 죄를 고발하셨다. 이제는 우리도 함께 하자. 함께 말하자. 함께 더 크게 말하자. 그래서 정말 할머니가 그 고된 삶의 마지막 숨을 크게 쉬실 때, 기쁜 마음으로 나는 괜찮아, 고마워 (I'm fine thank you)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도 함께 말하자. 

 'We can speak. always be with you.'

feat. 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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