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희망이 없다는 착각

by KIME

아프리카를 두고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땅에는 희망이 없어'

'사람들도 너무 게으르고 약속도 잘 안 지킬 뿐더러 사기칠 생각만 하고 있어'


한국에서 '개발 블루 오션 아프리카'라는 환상 속에 사는 이들보다

현지에 오래 거주한 속칭 '이방인들'에게 더 많이 이야기되는 이 말은,

아마 그들이 현지에 살며 경험한 믿음과 실망의 축척때문일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눈뜨고 코 베이는 사기를 당하는 것과 같은 경험 말이다.


이러한 의견을 비난할 수는 없다.

고작 6개월 머무른 나조차도 배신도 당하고, 사기도 당해봤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그야말로 인류애가 사라지는 경험들을 현지에서 겪고 나면 이 곳에서 희망을 거두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일반화하기 이전에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그 희망이란 무엇인지.



첫번째 착각,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한 나라가 아니다. 남아공과 같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소말리아, 니제르와 같은 빈곤한 국가를 하나로 묶어 칭하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

생각해보라. 한국과 베트남, 몽골을 가지고 무슨 공통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특히나 아프리카는 무려 54개국 이상이 포함된 개념이다.

즉 아프리카 국가들을 통칭해 일반화하기에는 아프리카는 너무 크다.


두번째 착각, '희망'

흔히 아프리카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말전된 선진국의 모습을 상상한다.

특히 한국인은 '한강의 기적'과 같은 극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한다.

한국인처럼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며, 번듯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그들의 느릿한 업무 태도와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방식에 관해 불만을 표출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한국인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못할까?
그건 아프리카 - 최빈국의 상황은 한국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소득 수준이 상당히 높은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 아침에 출근하여 회사에서 나오는 점심을 먹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은 평범한 일일지 모른다. 그 말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존을 위협할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럼 아프리카,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우간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이를 대입해보자.

일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모든 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알람을 맞춰놓고 잘 수 없다. 설령 휴대폰이 있다고 해도 잦은 정전으로 충전이 되지 않았을 경우가 많다. 한국이라면 보조배터리 몇 대를 놓고 휴대폰이 꺼지게 두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보조배터리를 모두가 구비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게다가 휴대폰이 고장날 경우 고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내가 살던 집의 가정부 역시 모두 휴대폰이 없거나 충전기가 없고, 데이터를 살 형편이 안 되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시간은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출근하는 것. 일단 우간다, 특히 지방은 스콜이 자주 발생한다. 비가 한 번 내리면 장대비같이 쏟아져 차가 없는 이상 이동이 힘들다. 대중교통은 거의 전무하며 오토바이 택시인 보다역시 비가 오면 운행을 멈춘다. 따라서 제 시간에 회사까지 출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비때문에 여러번 이동을 하지 못했던 적이 많다. 우비나 우산을 쓰고 가면 되지 않겠냐고? 일단 우비나 우산을 가진 사람이 많이 없다. 비가 많이 오지 않을 경우에는 비닐을 머리에 쓰고 이동하지만,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우비나 우산조차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또한 보다비를 낼 형편조차 되지 않는 경우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그렇다보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지쳐버린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하는 것. 역시 비때문에 정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추워진 날씨로 보온을 위해 두꺼운 옷이 필요하지만 빈곤한 이들에게는 방수가 되는 두꺼운 옷이 없다. 그저 낡은 스웨터나 점퍼를 입고 비가 마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보온이 쉽지 않고 이로 인해 자주 아프게 된다. 이러면 병원비로 많은 돈을 소비해야 한다. 따라서 비가 오게 되면 비를 맞고 일에 가는 것보다 일을 가지 않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이익이다. 말라리아 역시 일에 지장을 주는 큰 원인 중 하나다. 실제로 학교 수업을 하다보면 말라리아로 병원에 다녀온 아이들이 정말 많다.


종합하자면, 이들이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열심히 생존의 위협에 맞서 싸워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기와 배신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간다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는 않다. 쉴 새 없는 '차이니즈' 공격과 캣콜링, 바가지와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기 행각도 정말 많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주변 현지인들조차 돕기보다는 같이 싸우는 편을 택한다.


그런데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이다. 택시요금이나 시장에 가면 외국인에게는 바가지가 씌워진 가격으로 안내한다. 우간다인의 문화가 미개하다거나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우간다인도 현지인들에게는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한다. (물론 그들의 사기행각, 절도 및 소매치기 등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 막론하고 행해지는 범죄와 치안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인인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불편하거나 이해안가는 점이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을 들여다 보면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매 순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서비스에 관한 인보이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한국이면 몇 시간 안에, 아니 몇 분 안에 서비스 센터를 방문할 필요도 없이 해결되는 일이 이 곳에서는 며칠, 몇 주가 걸리고는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 서비스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산 서비스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우간다인 모두가 이러한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우간다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만큼 서비스가 잘 갖춰진 곳은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들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인터넷 카페도 있을 뿐 아니라, 틱톡,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카페에 가면 노트북을 들고 자신의 작업을 하는 우간다인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수도와 변방 지역의 상황은 현저히 다르다. 시골 지역은 정말 단칸방 같은 곳에서 가족이 모두 살기도 하고, 따로 화장실이나 욕실이 없어 바세린 크림을 온 몸에 발라 향과 보습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간다 내 자국 브랜드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직장에 다니며 소득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 역시 많은 곳에서 직업 선택의 기회를 갖는다. 학교 현장에도 둘러보면 여학생들이 굉장히 많고, 선생님들 역시 여성이 굉장히 많다. (물론 여학생들의 school drop out 문제는 심각한 형편이다.) 또한 부업으로 길 거리에서 야채를 팔거나 작은 물품 혹은 마스크를 파는 이들이 많다.


친한 현지인을 따라 현지 교회에 갔을 때 일이었다. 현지어와 영어 두 가지로 설교가 진행되었지만, 판자집 안의 열기에 정신이 아득해져 설교는 거의 듣지 못하는 중이었는데 현지인이 나에게 '너의 국가에 가서도 우리가 선교할 거야'라는 말을 전달해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선교의 대상은 항상 아프리카, 빈곤 지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도 동시에 우리에게 선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순간 '어떻게 제대로 된 신학 대학조차 없는 이곳에서 한국으로 선교할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다수인 국가에서 무종교 비율이 높은 한국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그들의 믿음은 정당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곳에 선교올 수 있다면, 그들도 당연히 우리나라에 선교를 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은 희망이란 이름의 선입견이 부서지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가깝다. 이 곳은 이 곳 나름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 질서에 따라 아주 편하게, 때때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가 적은 소득 수준으로도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빠르고도 극적인 성장을 바라며 불편함을 가지고 이 곳을 바라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그들은 그들의 속도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의 생활에 드러나 있는 자세함의 미학을 조금 더 편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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