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Jan 12. 2021

내가 소녀시대인가? 1000칼로리 식이를 하다니

식사 칼로리를 기록한 지 9일째이다.

짐작은 했었지만, 임신을 제외하고 최고 몸무게를 찍은 충격이 컸다. 그 기념으로 웬만히 체중에 너그러운 나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결심하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지인이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핸드폰에 삼성헬스앱을 깔고 전자저울을 하나 구입해서 식사 때마다 음식의 양을 재고 칼로리를 입력하고 있다.

처음부터 1000칼로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몸무게에 너무 놀라 그저 이전 몸무게 정도로만 돌아갈 때까지는 타이트하게 해 보자 마음먹고 연예인만 하는 줄 알았던 1000칼로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9일째 아직은 식이를 잘 조절하고 있다. 확실히 입력을 안 하고 먹었을 때는 내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 가늠이 안 되었는데 음식 하나하나 칼로리가 계산되니까 동기부여가 된다.

일단은 밥을 현미로 바꿨다. 내가 누구보다 내 식탐을 잘 알아서 흰밥으로는 실패확률이 높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거칠고 딱딱한 밥을 먹으려니 꼭꼭 씹을 수밖에 없었고, 음식을 먹는 시간이 좀 더 걸리다 보니 확실히 적은 양을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져서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반찬을 다 열어놓고 그냥 먹었을 때보다, 식사 전에 먹을 음식의 양과 종류를 정해놓고 그것만 먹게 되니 더 집중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지금도 점심으로 573칼로리를 먹었는데 배가 부른 상태이다. 허기가 질 때는 양배추를 쪄서 먹는데 한 그릇을 먹어도 몇십 칼로리 나가지 않는다.


운동은 심하게 할 생각도 계획도 전혀 없다.

내가 그렇게 스스로를 목표를 향해 몰아붙이는 목표지향적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야 운동을 열심히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동영상만으로 집에서 혼자 운동을 잘 해낼 사람은 못 된다. 그리고 지금도 이 식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데 운동까지 심하게 하면, 어느 새벽에 이성을 잃고 밥통을 부여잡고 있다거나 라면을 끓여서 이미 찬밥까지 말아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집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다. 그래도 우리 집이 20층이니 한 번 올라오면 꽤 숨이 찰 만큼 헐떡거리게 된다. 그럼 된 거지 뭐. 하고는 아주 만족해하면서 스스로 기특하다 하고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운동에 중독이 되어서 운동을 쉬거나 하면 힘들다던데. 내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 같다. 그저, 20층까지 안 쉬고 올라올 수 있는 날이 오려나? 그게 내 작은 목표이긴 하다. 사람마다 능력치가 서로 다르니, 누군가는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는 계단 하나 오르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이것도 내게는 큰 발걸음을 뗀 것이다.


결과는 9일에 0.8킬로 감량

생각보다 실망스럽다. 나는 이렇게까지 마음먹고 하는데 그래도 살이 양심이 있다면 한 2킬로는 빠져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소녀시대도 1000칼로리 식단을 했다고 어디선가 들어서, 내 머릿속에는 시작만 하면 그녀들처럼 될 거라는 야무진 생각을 했나 보다. 식단 칼로리만 같지 다른 모든 조건이 아주 많이 다른데 말이다. 소녀시대는 20대, 거기에 식이만 했겠나, 평상시에 추는 춤만 해도 웬만한 운동량 못지않았을 텐데. 비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래프가 꺾였다는 것에 희망을 가져본다. 그래프 경사가 완만해서 그렇지 어느 날엔가  '확찐자' 이전 몸무게로 돌아가겠지, 거기서 더 나아가 몸무게 앞자리 숫자가 바뀔 수도 있겠지, 또 한 번 내 자신에게 너그럽고 느긋해 본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하나가 생각난다.

앞 뒤 다 잘라먹고 내게 기억이 남는 장면은, 주인공이 꽃을 하나 꽂으려고 작은 화병 하나를 닦은 것으로 시작해서 집을 바꿨고 삶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머리 꼬리는 다 어디로 가고 이것만 이렇게 오랫동안 내게 남아 있을까?


내게는 아직은 변화를 알 만큼의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식이를 시작함으로 조금씩 건강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꽃병에서 시작한 변화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처럼.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고 다이나믹하게 몸이나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방향을 전환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속도가 중요하지 않고 방향이 중요하다.

한 달에 10킬로 감량이라는 광고에는 눈을 감는다. 혹하지도 않고, 설사 결과가 그렇게 보증된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한 건강한 방법일 리 없기 때문이다. 한 달에 10킬로를 빼면, 아차 싶은 순간에 다시 12킬로가 쪄있기 쉽다.

내가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것.
젊었을 때는 힘에 부쳐서 놀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자고만 일어나도 아픈 곳이 생기는 늙어가는 내 몸에 미안해졌다는 것.
늙지 않았다면 나에게 미안해했을 기회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새삼 늙는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스스로 기특하다 여겨주는 것.

이렇게 방향을 잡았으니, 나는 그렇게 천천히 터벅터벅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뛰어서 빨리 갈 생각은 일도 없다. 그렇게 뛰어서 어디에 도착하게? 젊었을 때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았지만, 결국은 길을 잃고 헤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뛰어다니면 더 빨리 길을 잃기만 할 뿐이다.


내 작은 시작을 응원한다.

소녀시대와 나의 다이어트는 그 목적부터가 다르다. 사진처럼 저렇게 딱 맞는 옷을 입고 춤을 추기 위함은 아니고, 내 자신을 사랑할 마음이 들은 이 나이에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내 몸과 더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이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하다가 몸이 많이 좋아진다면 저런 옷을 입어보지 말라는 법은 없지.

확 마 나도 사버려? 소녀시대 청바지? 어, 막 나도 입어버려?


그녀들은 소녀시대, 나는 갱년시대. 지지지지. 베베베베



<표지사진출처: The Legacy of Girls' Generation's 'Gee' on Its 10th Anniversary | Billboard | Billboard>


매거진의 이전글 천생연분인 줄 알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