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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11. 2021

삼일절이 되어도 만세를 할 수 없다.

오십견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확히 나이 오십에 찾아온 오십견이 신기하기도 했고, 이전의 크고 작은 통증처럼 시간이 지나고 치료를 하면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웬걸, 몇 달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엄마', '아빠', '맘마'를 배워서 어느 정도 말문이 트인 그 언젠가부터 들었던 말이 '만세해'이다. 엄마가 옷을 갈아입히려고 할 때마다, '만세해'하면 두 팔을 번쩍 들고, 목에서 얼굴로 옷이 빠져나올 때까지 눈을 질끈 감곤 했는데 말이다. 가끔 좁은 구멍에 얼굴 중간쯤이 끼어버려서 켁켁거리기도 했지만.

그렇게 평생 해온 만세를 지금은 할 수가 없다. 삼일절에 '대한독립만세'제창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오른쪽 어깨가 일정 각도로 꺾이게 되면 몰려드는 통증 때문에 팔을 위로 다 뻗칠 수가 없다. 그래서 옷을 입고 벗을 때도 오른쪽 팔은 어중간하게 펴고 왼쪽 팔로 살살 달래가면서 해야 한다.


만세만 못하는게 아니다. 어깨관절이 어느 각도 이상으로 움직여야하는 동작은 다 제한을 받는다. 등이 가려울때도 영 곤란하다. 가려운 부위가 왼손이 닿는 곳이면 다행이지만 오른쪽에 치우쳤다면 왼손을 더 늘리던가 수를 내야한다.

같은 이유로 줄넘기도 못한다. 그러다보니 어, 복싱도 배우고 싶었는데 이젠 못하네 생각이 든다. 백미터를 이십초에 뛰는(?)나의 민첩한 운동신경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깨하나 때문에  나의 도전을 아쉽게 후딱 접어본다.


오십하나가 되면 오십견이 사라지려나?

나이 오십과 통증이 딱 붙어있는 것 같아서, 무식한 줄 알면서도 드는 생각이다. 물론 의사 선생님께는 물어볼 생각도 없는 질문이긴 하다.

둘째를 낳을 때는 임신진단부터 분만을 포함하여 총 3회 병원을 방문했던 내가, 지금은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나이 오십, 한참 물리치료가 좋을 나이이다.


남들은 우아하게 커피 마시고 책 읽는 와중에, 내 취미는 물리치료가 되어 버렸다.

자동 안마기능까지 있는 침대에 누워서 3종 물리치료를 다 받는 데 드는 돈은 고작 5300원. 제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재정이 든든하기만을 바라면서, 그동안 비싸다고 생각했던 건강보험료의 혜택을 보고 있다. 물론 아프지 않아서 그 혜택을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떤 날은 나은 것 같다가, 또 그다음 날은 똑같은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물리치료를 연달아 받지 못하면, 어깨가 좀 더 뻣뻣해진다. 그렇다고 치료를 받아도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다.


답답한 마음에 의사 선생님께 항의 내지는 불평을 해 보면, 세상 마음 느긋하게 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딱 세 번 내 팔을 들어보고는, 조용히 말할 뿐이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니, 제가 팔이 여기까지 밖에 안 올라간다고요. 보세요. 여기 이상으로 올리면, 아아.. 아파요' 내 증상을 잘 모르시나 싶어 조금 연기를 보태서 아픈 팔을 보여주면 또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밤에 오른쪽으로 누워서 못 자요. 어깨가 아파서 자다가 깨요' 마지막 어필을 해보니, '다른 분들도 그 점을 가장 불편해하세요. 잘 때 아프다고요' 하며 갑자기 자리에서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찾는다. 어디서 받았다며 어깨 운동하는 스트레칭 도구를 꺼내서 선물이라고 준다.

나는 내 증상을 조금 더 소리 높여 호소하지 못한 찝찝함과, 공짜로 이게 어디냐며 흐뭇해하는 감정을 서로 상쇄시키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내 오십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의사 선생님은 이해 못하는 듯 하지만, 지나치게 엄살을 떨었나 머쓱해지고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구나. 별거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이만큼은 아프구나.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남이 보기에는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구나. 아픔을 영원히 없애버릴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달래가면서 같이 사는 방법을 배우면 되겠구나.

마음이 아픈 구석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도 이만큼 아프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고, 나는 매일 그 속 안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해준다면. 그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라고 어깨 세 번 들어보듯이 나를 알아봐 준다면. 언제나 조금씩은 아린채로, 때로는 많이 아픈 채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겠지 싶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내가 새로 발견한 멋있는 여정이다.

버스로 네 정류장 앞에서 미리 내려서 걷는다. 왼쪽으로는 작은 언덕 나무들이 있는 산책길은 내가 집 주위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소이다. 오늘도 조금 더 건강해졌다는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랄까. 물리치료를 받고 20분 정도 걸어서 집에 들어오면 내 인생에서 20분만큼 좋은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오십견을 계기로 나이듦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깨가 아프고 나서는 동작들이 좀 더 조용해지고 차분해졌다. 예전처럼 생각하지 않고 확확 휘둘렀다가는 어느새 화끈거리는 통증 때문에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정해진 목적지에 1초라도 더 빨리 도착해야 마음이 놓였는데, 지금은 안전하게 아프지 않고 도착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아마도 나이 50에 오십견이 찾아오는 이유는 그래서인 것 같다. 내려놓을 나이라고, 조금 천천히 걸으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때이라고,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큰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어깨에 조금 힌트를 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이유라면 오십견도 내 나이 오십에 찾아온 아프지만 반가운 친구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51, 52, 60에 어딘가 또 새롭게 아픈 구석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 아픔은 또 내게 어떤 배움을 줄런지? 닥쳐보겠다.


오십견아, 우리 같이 조금씩 아프고 많이 배우면서 같이 잘 지내보자. 하지만, 너무 오래는 안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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