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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11. 2021

엄마하기 싫을 때

'이건 아니지, 그래도 내가 엄마이고, 엄마는 숭고한 건데 하기 싫다는 말이 어딨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 마음이 정말로 이런데, 나도 살아야지. 뭐 어때서.'

두 마음이 계속 싸웠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를 누르고 있던 '엄마'라는 직책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렸고, '엄마'를 한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는 요즘 내 직무만족도가 바닥인 이유를 찾아보고자 했다.

나는 과연 이직에 성공할 것인가?


한 달 넷플렉스 공짜 시청을 마음껏 누리고 해제했다.

하루라도 늦으면 한 달치 비용을 낼까 봐 매일매일 카운트를 하다가 한 달 되는 딱 그 날 해제를 했다. 그제서야 딸이 하는 말, '엄마, 미리 해제를 해 놓아도 마지막 날까지는 사용할 수 있어.' 나쁜 기지배, 진작 말해주지. 나는 딱 날짜 맞춰서 해제해야 하는 줄 알고, 하루라도 먼저 하면 손해 볼까 봐 노심초사했구만.


그래도 정말 넷플렉스에 미안할 만큼 온 식구가 뽕을 뽑고도 남을 만큼 본 것 같다. 해제한 날 넷플렉스로부터 날아온 메일 '안타깝습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문구가 자동메일이 아니고 감정이 섞인듯하게 느껴졌다.

내가 본 것만 해도 킹덤, 킹덤2, 비밀의 숲, 비밀의 숲2, 멜로가 체질, 작은 아씨들, 일본 애니 네다섯 편, 진격의 거인 앞에 조금, 그중에서도 으뜸은 '나의 아저씨'였다.

이걸 보는 삼일 내내 잠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면서 울었다. 보면서 울고, 보고 나서도 울고. 지안이도 불쌍하고, 박동훈 삼 형제도 불쌍하고, 바람피운 아내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사랑을 놓지 못하는 정희도, 연기를 더럽게 못하는 여배우도 다 불쌍해서 돌아가면서 울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다.

'젠장할. 나는 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있을까?' '어느 한 사람만 이해를 해야지, 제각각 다른 형편에 놓인 사람들을 모두 다 이해하고 있으니.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내가 엄마여서 그런가 보다. 망할 놈의 전천후 공감능력 같으니라고. 나는 원래 누군가를 그렇게 이해하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았는데, 엄마 노릇을 하면서 누구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숙이 들은 것 같다. 그런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엄마 하기 지쳤나 보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든 가족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때가. 그리고 그 이해가 이제는 조건반사처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된 때가.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모두 다 이해를 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저렇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또 이해를 해야 설명이 되고, 내가 버텨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해하지 못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싶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거꾸로 나를 이해하려 해 주고, '네가 그럴 수 있지. 그렇게 힘들 수 있지'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나 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안아주고 토닥거려주는 것 말고, 나도 남에게서 받는 위로가 필요하다.


엄마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다.

엄마도 그냥 참는 거다.

엄마도 서운하지 않은 게 아니다.

엄마도 힘들다.


그렇다고, 내일부터 당장 '나, 이제 아무도 이해 안 해. 다들 알아서들 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이직하기도 어려운 엄마라는 자리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내가 울었던 진짜 이유는, 아마도 지안이 때문도 아니고 내가 불쌍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발목 시리게 꽁꽁 얼어서 다니는 지안이 안에서, 내 모습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직은 보류하고, 업무에서 우선순위를 바꾸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이해하는 데에 애쓰기로.

내가 힘든지, 내가 화났는지, 내가 행복한지, 그 어떤 다른 사람보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나를 '엄마'라는 직책으로 과대평가하지 않기로.


그러기로.


<표지사진출처>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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