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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Oct 19. 2020

나는 옛날 사람이다

‘옛날 사람’과 ‘노인’은 비슷한 듯 다르다. 

‘옛날 사람’은 나이가 많고 적음 보다는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고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다더라’하는 이야기 속에 사는 사람 같다.  내 나이 50이니 노인은 아니지만, 딸에게는 ‘옛날 사람’이다. 


‘응답하라 1994’드라마가 한참 유행이던 해, 나는 그 시대의 추억을 떠올리느라 신나서 봤었고, 딸은 나정이 신랑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오랜만에 모녀가 다정하게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스토리 따라가랴, 화면 속에 나오는 패션, 음악에 맞장구 치느라 세 배는 바쁜데, 딸도 연신 나에게 질문을 하느라 바빴다. ‘엄마, 그러니까 삐삐가 어떤 거야? 저걸로 어떻게 통화를 해?’ 바빠 죽겠는데 사춘기 딸이 말을 걸어준 것 만도 감지덕지해서, 초스피드로 대답한다. ‘어, 그러니까 공중전화에서 상대방 삐삐로 전화를 걸어서, 받을 전화번호를 남기던가 음성을 남기면 상대방이 또 메시지를 받고...’ 딸은 채 듣지도 않고 말을 낚아채서는 도리어 화를 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휴. 옛날 사람’ 

나는 삐삐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옛날 사람이 되어서 이유 모를 비난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왠지 주눅이 들면서도 화가 나서 변호가 하고 싶어졌다. 

이걸 설명하느라 모녀간에 싸움이 날 뻔 했다.


‘왜 옛날 사람이라고 부르는가?’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집에 돌아오니(사실은 국민학교), 엄마가 집에 전화를 놓았다고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다이얼에 검지 손가락을 넣어서 돌리면 다다다다닥 하면서 번호 하나가 걸려지는 아날로그 전화기였다. 40년 후에 나는 전화기로 낯선 곳에서 길을 찾고, 물건을 사고, 수업을 듣는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최소한 나와 같이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는 비슷한 기술을 경험하면서 지냈다. 엄마와 딸, 멀게는 할머니까지도 이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 설명할 일이 많이 없었겠다. 오히려 오랜 경험으로 노하우가 쌓인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했겠지. 요즘은 세대를 걸쳐서 전수받을 일이 별로 없고, 오히려 하루아침에도 변하는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익히는지가 중요한 때인 것 같다. 


옛날 전화기는 리듬이 있었다. 다이얼에서 손을 떼면 다다다다 하고 다이얼이 돌아가고, 전화번호를 다 돌리면 뚜뚜뚜하고 연결음이 들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옛날 사람이 맞다. 핸드폰을 똑같은 기종으로 딸과 같이 바꾸면 나는 사용설명서를 정독하느라 바쁜 와중에, 딸은 그냥 이것저것 만지더니 갖고 놀고 있다. 모르는 기능은 구박 한번 당하더라도 딸한테 물어보는 게 지름길이다.  딸 세대는 자신들이 익숙한 것에 능숙하지 않고, 반면에 자신들이 모르는 것만을 늘어놓는 세대를 '옛날 사람'이라 칭하고 자신들과 구별짓는 것 같다. 전자가 '기술'이라면 후자는 '경험'쯤 되려나?  검색어만 넣으면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기술만이 중요한 시대라면 경험만 있는 '옛날 사람'의 효용가치는 낮을 것이다.  여기에서 욱하는 마음과 함께 질문이 하나 든다.



'옛날 사람은 필요하지 않은가?'


AI의 정보량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정보의 양만으로 AI가 진짜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는 획일적인 몇 가지 기준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 기술을 얼마나 쉽게 사용하는지는 그 사람의 실용적인 기능을 판단할 뿐이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내게는 많은 이야기, 딸과 아직 채 나누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딸을 임신했을때는,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이 불법이던 때였다. 끝까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고 아이를 낳고 나서 딸인 줄 알았을 때의 첫 마음이 생생하다. '아, 이 아이도 나와 같이 아이를 낳을 때 많이 아프겠구나'하는 짠한 마음과 동지애를 느꼈었다.  꼬꼬마일때 24시간 드레스만 입기를 고집해서, 치과검진을 가는데 보라색 드레스를 입겠다고 해서 내가 계단 뒤에서 치맛단을 들고 시중들던 때도 아직 이야기 하지 못했다. 첫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했을 때, 그게 너무 예뻐서 거실 트리 밑에서 자겠다고 고집 부렸던 것을 딸은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 내가 일했을 때보다 더 많은 여성의 권리를 누리기를 바란다. 이제 대학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내가 '여성학과목을 들을 수 있는 대학을 갔으면 좋겠어' 했을 때, 무심한 척 귀담아 듣는 딸이 뭉클하다. 


앞으로 계속 발전할 핸드폰과 무엇이 나올지 상상도 안되는 새로운 기기의 기능은 평생 딸에게 빚질 것이다. 그 보답으로 나는 딸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앞으로 네가 얼마나 멋진 여성으로 성장할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엄마도 흰머리를 염색하기 전에는 너처럼 빛나는 갈색 머리였다고 두고두고 말해 줄 것이다. 


'양현석이 춤을 잘췄어?'

드라마를 보다가 딸의 질문이 훅 들어온다. 드라마에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중에 딸과 나 둘 다 아는 멤버가 양현석이다. YG는 딸도 아니까. '어, 서태지는 노래 부르고 양쪽에서 양현석하고 이주노라고 유명한 댄서였는데. 그때 옷 태그를 일부러 안떼고 입는게 유행이었는데. 컴백홈 노래를 듣고 정말 집나갔던 가출학생이 돌아왔대.' 되돌아 오는 톡 쏘는 반응이 없다는 것은 사춘기 소녀에게는 성공한 답변이라는 뜻이다.  


씨티폰 설명은 반만 성공했던 것 같다. '받지는 못하고 걸을 수만 있는 전화기야. 그런데 공중전화 옆에서만 터졌어'라고 시작은 그럴듯했으나, '왜?'라는 생각지 못했던 두번째 질문에는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이후로도 사이좋게 성시경의 '너에게'를 같이 듣곤 했다.  나에겐 서태지의 음색이 더 익숙했지만,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들으며 좋다고 말했다.  이것은 기술습득력이 다른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이고, 이게 쌓여서 우리 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딸이 '옛날 사람'이 되었을때, 나를 추억해주는 기억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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