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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Oct 20. 2020

나는 호갱님이다

feat. 뒤끝 긴 착한 사람 콤플렉스 but 언젠가는


호갱님이라는 단어 뜻은 뭘까?

표준어는 아닌 것 같으니, 뜻을 유추해 봐야겠다. 일단은 '호구'와 '고객님'이라는 단어가 조합된 것 같다. 호객님 하면 발음이 이상하니 호갱님이라고 부드러운 듯,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바꿨겠지. '호구'는 국어사전에 있는 말이다. 여러 가지 뜻 중에,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의 비유'가 있다. '고객'과 합치면, '어수룩하여 물건 팔아먹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다. 딱 나다. 전국에 물건 파는 사람들에게 호갱님의 몽타주를 그려달라고 해서 모으면, 내 주민등록 사진이 될 것 같다.

'호구'는 호랑이 입이라는 한자어다. 어쩌다가 이 무서운 호구를 만만하게 보게 되었을까? 내가 호갱님이라면, 내가 호랑이상이라는 뜻인지? 
나는 베스트 호갱님이다.

같이 공부했던 학우가 무심코 이야기를 꺼낸다. '핸드폰 사는 곳 중에 제일 손해 보는 데가 통신사 직영매장이래요.' 할 말이 없다. 얼마 전에 삼성 디지털 플라자에서 핸드폰을 바꿨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게 살 때는 싼 것 같아도 결국은 핸드폰 요금을 치면 비싸게 사는 거래요.' 젠장, 기기값은 거의 공짜였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는데 그게 그런 거였구나.

'5G 산 사람들은 지금 다 후회한대요. 제대로 서비스도 안돼서 다시 바꾼다는데.' 나 솔직히 5G가 뭔지도 모르고, 최신이라고 해서 샀는데 안 터지는 이유가 있었구나.


핸드폰 회사 마케팅에서는 나를 연구하나 보다. 어떻게 하면 고객을 유인해서 비싼 값에 핸드폰을 팔까 연구하고 단계별로 유입할 전략을 세우는데, 나는 아무 장벽 없이 1단계부터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호갱님인가 보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 속마음을 다 들켜가면서 물건을 넙죽넙죽 사는 걸까?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궁금해졌다.


나는 어쩌다가 호갱님일까?

일단은 물건을 살 때 흥정이 불편하다. 정가제로 다 찍혀있어야 마음이 편한데, 가끔 흥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면 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깎아주세요' 말을 꺼냈는데 그쪽에서 너무나도 순순히 '이천 원 빼드릴게요'하면,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스친다. '아, 이미 이천 원은 얹혀 있는 금액이구나. 더 깎았어야 하는 거구나.' 그렇다고 '더 깎아주세요'라고 말할 배짱은 없다. 이미 흥정에는 진 듯하고, 더 진행하면 내가 뻔뻔한 손님이 되는 것 같아서 개운하지 않은 마음을 서둘러 덮고는 끝내버린다. 


'왜일까?' 나는 아직 하지도 않은 기싸움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뭐 대단한 싸움도 아니고 두 번 볼 사이가 아닌 줄 알면서도, 누구와 실랑이를 하고 마음에도 없이 센 척을 해야 하고, 다 안다는 듯이 굴어야 하는 그 잠깐의 시간이 싫다. 서로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면 그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흥정을 하는데, '자, 오천 원을 깎지 못할 근거를 대 보세요.'이럴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이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진 싸움이다. 흥정에서 뿐일까?  나는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싸우지 않고, 지는 편을 택하는 편이다

용감하게 싸우지 않고 비겁하게 지는 것일까?
비겁하게 싸우지 않고 용감하게 지는 것일까?

크게 득실이 없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의견에 맞춰준다. 말하다 보면, 내 의견이 그렇게까지 옳은가, 남 의견도 맞는 것 같아서 조율 아닌 인정을 하고 나온다. 여기까지가 끝이면 해피엔딩일 텐데, 이런 일이 쌓이다 보니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혼자 분할 때가 있다. '그때 그렇게 이야기할걸. 괜히 나만 손해 본 것 같아. 내일은 꼭 말해야지' 마음먹어도, 입 한번 떼기가 쉽지가 않다. 상대방이 나를 나쁘게 생각할까 봐. 


'아, 내가 그렇구나'하고 나 자신을 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갈등이 싫어서 피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기로.  

이번에도 피하려는 거야'알아차렸는데 정말로 넘어서야 하는 갈등을 만날 때는, 눈을 감지 않고 뚫어져라 응시해볼 것이다. 비겁해 지지 말아야 할 때,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할 때, 정말로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야 할 때, 호랑이 입에서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본다. 


그때를 위해 지금은 힘을 아껴 호갱님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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