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Oct 24. 2020

나는 반백 아미이다

나는 아미이다

나는 군인은 아니니, BTS 팬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덕질의 시작은 사춘기 딸하고 뭐라도 하나 말을 섞어볼 요량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그룹 멤버 이름이라도 알아야겠다 하는 학구열에서 시작되었다. 


멤버가 7명이나 되니 일단은 얼굴하고 이름을 매치하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좀 쉽게 해 볼 심산으로, 머리색으로 외웠더니 화면에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달라지면 도로 헛수고다. '아, 민트 색 머리가 슈가였는데, 이번에는 다르잖아' 망한 거다. 그래도 다른 종류의 뮤직비디오를 몇 번 보았더니, 이제 얼굴하고 활동명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슈가가 설탕이 아니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민트슈가, 슈가의 뜻은 shooting guard의 약자이다. 이것도 나중에 알았다. 사진:블로그 Reply

다음은 본명을 외울 차례.  지민, 정국이는 똑같고, 진은 석진이 간단하고, RM이 남준이, 제이홉이 호석이, 슈가가 윤기, 뷔가 태형이. 브이가 아니라 뷔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구호를 외치려면 성까지 붙여서 순서대로 외워야 한다.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 BTS' 여기까지가 기본과정이다.


중급과정 부터는 동영상을 열심히 보면 된다. 이쯤 되니 딸이 오히려 시큰둥하고 '정국이 아빠가 엄마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리다'며 내가 BTS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를 든다. 내가 BTS를 좋아하는데 멤버 아빠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나이 제한이 있을 리도 없고, 이제는 딸과는 무관한 나의 길이다. 마이 웨이.

처음에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놀라웠다. 어쩜 그렇게 7명이 한 몸인 것처럼 자로 잰 듯이 딱딱 맞는지, 뮤직비디오가 아닌 생방송에서도 퍼포먼스는 완벽했다. 공연 영상을 보는데 외국 팬들이 우리나라 가사를 다 같이 불러주는데 소름이 돋았다. 우리나라말로 랩까지 완벽하게 부르는 그들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음원이 나오면 그 즉시 전 세계에 있는 아미가 가사를 번역해서 각 나라말로 올려주는 영상을 보고 그들은 BTS 노래가 뜻하는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애써주는 노력이 고마웠다.


외국 아미들은 왜 먼 나라의 7명 청년들에게 열광하는지, 내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들은 방탄의 외모, 패션, 화려한 퍼포먼스에도 열광하지만, 노래가 품고 있는 내면에 더 감동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갈 길은 먼데 왜 난 제자리니 답답해 소리쳐도 허공의 메아리"('Tomorrow'中, 2014 SKOOL LUV AFFAIR)

자신들을 나아가게 하는 꿈에 대한 열정, "여전히 내 심장을 뛰게 해 내가 진짜 나이고 싶게 해"('힙합 성애자'中, 2014 DARK&WILD)

남들 시선과 실패에 대한 자유, "니 멋대로 살어 어차피 니 거야.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불타오르네'中, 2016 화양연화 Young Forever)

그리고, 결국은 실패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긍정, "또 진흙 투성이겠지만 나를 믿어 나는 hero니까"(Anpanman中, 2018 LOVE YOURSELF轉 Tear) 


누군가가 건네는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된다. '지금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있어서 힘이 돼요' 무심한 듯 해도, 듣는 이에게는 나중에까지 온기가 남아있는 말이 된다.

BTS가 노래하는 가사도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저마다의 아미들에게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젠더, 인종,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지만, 사람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아픔, 극복, 불안에 대해서 솔직하게 녹여내는 BTS를 향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사해한다.


나는 반백(白)이고 반백(百)이다. 

나이도 50이고 머리도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반백을 넘어 온백으로 가려고 한다. 반백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공포,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긴장을 아직도 갖고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인 이상, BTS가 그런 마음을 노래해 주는 이상, 나는 아미일 것이다. 

반백에 아미여서 좋은 점은, 좋아하는 노래의 추억이 젊어진다는 것이다. 김광석, 이문세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전 가수들을 떠올리면 카세트테이프의 늘어진 소리가 겹치면서 추억이 모두 아련해진다는 서운함이 있다. 내가 BTS의 노래를 떠올리면, 거기에 연관된 기억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IDOL에서 입고 나온 의상처럼 총천연색이다. 그 색이 바래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지나가야 할 거고, 그때 나는 정말로 할머니가 되겠지.

지금의 화려함이 옅어지더라도, BTS가 주는 메시지의 힘은 옅어지지 않을 것 같고, 나는 그때도 할머니 아미일 것 같다. 

다만 구호를 외치는 데에는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한번 쉬고)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콜록콜록) 전정국 BTS' 

이렇게 화려한 그들도 나이를 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Be yourself(사진출처: 블로그 정이 넘치는 인생)

표지사진출처: 포토뉴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호갱님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