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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03. 2020

라디오 주파수 같은 딸

예전에는 라디오를 정말 많이 들었다.

딸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이미지로 고른 라디오 사진에 갑자기 마음이 훅 떠버렸다. 내가 학생 때 듣던 라디오도 이런 종류였다. 카세트테이프 데크가 같이 있어서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면 공테이프를 걸어 놓았다가 녹음을 하곤 했다. 갑자기 옛날 기계가 떠올라서 샛길부터 들렸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에서 주말에 녹화방송을 하면 이불 덮고 혼자 낄낄거렸고, 이문세의' 별밤'도 양대산맥이었다. 팝송을 발음 나는 대로 한글로 적어서 외워 불렀는데, 이제는 BTS의 한글 가사를 외국 팬들이 그렇게 외우겠지. '라떼는 말이야'를 안 하고 싶은데, 저절로 그렇게 되니 그냥 해야겠다. 옛이야기가 나쁜가? 옛날만을 고집하는 꼰대가 나쁜 거지. 나는 옛날은 회상하면서, 오늘은 배우고 그러고 살란다.


딸은 왜 라디오 주파수일까?

맞추기가 어렵다.

요즘은 자동으로 라디오 채널을 잡아주지만, 이전 라디오는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서 소리가 잘 나오는 주파수를 찾아가야 했다.

딸도 그렇다. 다이얼을 오른쪽으로 한 칸 돌렸는데 분위기가 싸하다 그러면 다시 왼쪽으로 온 만큼 가야 한다. 주파수를 거의 나노 단위로 아주 세심하고 예민하게 조절해야 할 때도 많다. 시험을 망쳐서 기분이 나쁜 것 같았는데, 또 나름 개운한 얼굴 표정도 있다. 이럴 때 기분이 좋을 줄 알고 섣불리 농담을 해 버리면 안 된다.  두 번은 더 지켜봐야 한다.


집에서는 잘 들렸던 채널도 차를 타고 멀리 나가다 보면 잘 안 잡힐 때가 있다.

딸도 그렇다. 집에서는 어린냥도 부리고 잘 웃다가도 밖에 둘이 나간다거나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있을 때 만나면 영 어색하게 군다. 딸은 나와 속도가 많이 다르다. 걷기, 음식 먹기도 나는 한참 빠르고, 딸은 느리다.  길에서 별생각 없이 걷다 보면 뒤통수가 따가워지고, 저 뒤에서 딸이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제서 걸음을 한참 늦춰야 딸과 같이 걸어갈 수 있다.

식당에 가서 같이 밥을 먹는 것도 그래서 어색하다.  내가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워낙 바쁜 환경이었기 때문에, 15분 안에 출발해서 먹고 병동에 복귀까지 해야 했다. 그때 생긴 버릇 때문에 나는 보조를 맞춘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그릇 밑바닥을 훑을 때쯤이면 딸은 반 정도를 먹고 있다. 시간을 맞춰볼 요량으로 화장실도 가보고, 물도 따라보고, 휴지도 가지러 일어서 봐도 정신없다고 타박만 받을 뿐이다.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잡음들 사이로 음악이 들릴 때, 음악이 더 잘 들리는 쪽으로 채널을 맞추려면 잡음 말고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

딸도 그렇다. 가뜩이나 말을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에, 말을 할 때는 최대한 모든 신경을 딸에게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가끔 전체를 듣지 못할 때라도 부분으로 들은 단어와 문맥을 고려해서 최대한 유추할 수 있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차 안에서, 내비 소리와 딸이 듣는 음악 소리에 섞여서, '1,2, 3학년이...(웅얼웅얼)'만 들었다. '그렇지, 이번 주가 1,2, 3학년 전체가 모이는 첫 주지.'라고 딩동댕 정답을 말해 줬다. 딸은 무심했지만, 나는 속으로 얼마나 환호했는지. 가끔 엉뚱한 답이 나올 때면, 딸의 '아, 됐어'라는 반응을 듣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정답률을 높이려면, 평소에 딸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친구들 이름, 기숙사 방은 누구와 쓰는지, 저녁에 친구들과 무얼 같이 먹을 예정인지, 요즘에 짜증 나는 일은 무엇인지 등등. 물론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딸의 기분상태에 따라 전파 상태가 안 좋을 때도 있다.


나는 딸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읽어낼 때가 재미있다.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는 것 같달까? 아빠들에게는 아무리 공식을 가르쳐 주고 숫자를 대입만 하게 해도 못 푸는 문제이다. 왜냐면 공식에는 여자들끼리 통하는 변수가 존재하는데, 그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그 변수를 집어넣어 문제를 풀고 남편에게 설명해 주면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시험을 망쳐서 일단은 기분이 안 좋아. 그런데, 아주 망친 건 아닌 것 같아. 왜냐하면 저번에도 망쳤다고 했다가 결과 나오고는 괜찮아진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좀 실드를 치는 거지. 그래도, 수학 문제는 다 풀어야 된다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잖아. 완전 망친 거면 다 접었지. 내가 봐서는 평년작이거나, 약간 떨어졌거나 그 정도인 것 같아.'

여기까지 말하면, 남편의 질문은 늘 똑같이 정해져 있다. '그걸 어떻게 다 알아?' 내 속마음은 이렇다. '모르는 네가 더 이상해요'


가끔 나와 딸의 주파수가 딱 맞을 때가 있다.

닭갈비를 먹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서서 밥 볶을 준비를 할 때. 김 부셔서 김가루 조제, 볶음밥 위에 치즈를 얹어서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우리 집의 가훈이다.

진로나 공부고민이 있을 때는 그래도 쪼르르 안방으로 와서, 무심한 듯 툭 물어본다. 나는 정말로 말도 안 되게 무식한 고2 엄마이기 때문에, 딸이 결정해 준대로 내가 따라가면 된다. 그래도 같이 고민하고, 계획하고 우리는 제법 한 팀이다. 다른 집에 비해 감독과 선수가 바뀌긴 했지만, 난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한 팀인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변명을 에둘러대면서.

우리 둘이 가장 잘 맞는 순간은, 내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딸을 바라볼 때이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딸을 바보같이 쳐다볼 때가 있나 보다. 그럼, 딸이 알아차리고는 시크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좋아?'


'많이 좋고말고. 너는 엄마보다 더 멋있는 여자가 될 거야. 그렇게 되게 엄마가 옆에서 응원할게. 너랑 똑같이 여자라서 엄마는 좋아. 남자였으면 아빠였으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을 몰랐겠지.

너는 네 주파수가 있지. 엄마는 엄마의 것이 있고. 그렇게 서로 이야기하면서, 맞춰 보면서, 때로는 지지직거리면서, 때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렇게 지내자.

우리 코로나 끝나면 같이 온천 갔다가 해장국이나 한 그릇씩 하고 오자. 역시 모녀 사이에는 해장국이지. 바나나 우유 말고.'


나는 긴 답을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서로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동을 느끼면서, 우리가 모녀임과 동시에 자매애로 묶여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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