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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10. 2020

내가 그린 그림, 내가 그리는 삶


내가 그린 두 개의 수국 그림이다.

하나는 요즘 유행하는 DIY로 밑본에 적혀있는 번호대로 색을 깨알같이 따라서 칠한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붓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이다. 물론 보고 따라한 그림은 있었다.


첫 번째 그림을 그릴 때는 번호대로 색칠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형체도 없고 그저 색깔 있는 점들이 군데군데 있는 형상이었다. 이게 그림이 될까 싶었는데 열심히 번호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수국이 꽂힌 화병이 나왔다. 아마도, 어느 작가가 표현한 그림을 색마다 분류하고 색칠 공부하는 빈칸처럼 색칠할 곳을 컴퓨터가 나누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렇게 해체한 그림을 나처럼 다시 열심히 색과 선, 면을 재조립하면 완성품이 되는 거다. 잘하지는 않지만, 뭐든지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는 손을 놓지 못하는 성격이라 며칠 바짝 해서 마쳤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허점 투성이겠지만, 벽에 걸어놓고 조금(아니 많이) 떨어져서 보면 그럴듯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점묘파가 되었다. 한 점 한 점. 쇠라는 이 그림을 완성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는데,  사이비 점묘파는 며칠 걸렸다. (그림출처: 포스트 미메시스)

하지만 그림을 각본대로 짜 맞춘 듯하고, 점만 찍다가 끝난 것 같아서 못내 아쉬웠다. 못 그려도 붓질하면서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해서 작은 그림 하나를 그리고 왔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이게 그림이 될까 싶었는데, 물감을 바르고 형태를 잡아나가다 보니, 남들에게 수국이라고 말하면, '아 수국이구나' 알아 보겠는 그림이 나왔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니, 대조가 된다. 그림을 그릴 때의 과정과 내 마음이.


두 그림의 차이

첫 번째 그림은, 과정을 되돌려봐도 별로 기억 남는 게 없다. 내가 직접 구상하고 의도한 결과물이 아니고 정해진 면적을 메꾸어나갔던 과정이어서, 그림 속에서 어디를 먼저 그렸는지, 꽃송이는 어떻게 완성이 되었는지 전혀 머릿속에 없다. 그도 당연한 것이 처음부터 과정을 생각하고 그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순전히 밑본과 색의 번호만 지시대로 따라한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라고는 일도 없었다.


두 번째 그림은, 할 이야기가 많다. 그림이 잘 그려졌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했기 때문이다. 그린 과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 있고, 어디를 정성을 들였는지 어디는 망쳤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희한한 게 선생님이 색을 섞어 주었던 부분만 내게 비어있다. 그것까지 내가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두 시간 반안에 완성해야 하는 클래스라 색 배합은 선생님이 도와주었다.

누군가 내게 물어보면, 처음에는 그저 파란색, 보라색의 덩어리였는데, 내가 한참 고민하다가 꽃잎들의 윤곽을 잡아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림이 풀렸다고 신나서 이야기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해서 스스로 해결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전까지 풀리지 않았던 그림이 그 이후로는 조금씩 풀렸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중에 또 그리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어디서 잘못했는지를 아니까.


나 같다

첫 번째 그림은 누가 그려도 비슷하게 완성도 있는 그림이 나오겠지만, 나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잘 그린 그림을 얼추 비슷하게 재생은 시켜 놓았지만, 선하나 점 하나 내 마음대로 그린 게 없다. 내 그림이 아니다.

당연히 두 번째 그림이 나 같다. 더 온전한 나만의 그림을 그리려면, 구상부터, 색 선택부터 다 혼자 한다면, 정말로 나라고, 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더 생겼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림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인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혼자서 이루고 싶은, 나만의 그림이 있는 것 같다. 그림을 뛰어나게 잘 그려내면 더 좋겠지만, 그림이 내 것이냐 아니냐는 결과로 결정되는 게 아닌 듯싶다. 선이 삐끗한 부분도, 색이 아쉬운 부분도 내가 그린 그림이니까 내 눈에 띈다. 또 그리면 된다. 사람도 그리고, 풍경도 그리고. 자꾸 그리다 보면, 어느 날은 더 좋게, 어느 날은 또 아쉽게 그려지겠지.


내가 인생에서 많이 배우는 딸이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난다.

미술 수업을 받는 중에 선생님이 그림을 수정해 주려고 붓을 잡았는데, 그 도움을 손으로 쳐내가면서까지 거절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다. 선생님이 놀라지는 않았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속으로 '저 녀석은 앞으로 잘 해내겠다'싶었다.


나 같은 그림, 내가 그려나가는 인생.

내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가라고, 스스로 실수하고, 스스로 지우기도 하면서, 너의 인생을 그려가라고 응원하고 싶다.


나만의, 그들만의 인생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음번 그림에는 잎사귀를 좀 더 잘 그려보리라. 첫 번째 그림에 있는 못생긴 잎사귀들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잎사귀의 가운데 선 몇 개는 잘 그린 게 있다.

내 삶도 이렇게 자세하게 들여다보리라. 선 하나, 면 하나. 사람 하나, 책 하나. 다 소중하게 들여보고 기억하고 싶다. 너희도 그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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