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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09. 2020

온기가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작년 겨울부터 유행했던 패션 아이템 중의 하나가 일명 '뽀글이'라고 불리는 인조양털 재킷이다. 겉에 있는 뽀글뽀글한 털의 질감이 따뜻하고 푹신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나갔다 들어와서 뽀글이 옷을 벗어 놓으면(물론 바닥에), 강아지가 달려와서 그 위에 자리를 잡는다. 집안에서 제일 푹신한 자리를 찾아내는 강아지인데 거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제 따뜻한 것을 찾는 계절이다. 작년에 히트를 쳤던 코코아 광고도 생각이 난다. 마트에 가니 호빵이 나왔길래 덥석 사서 몇 개째 먹고 있다. 강아지이던 사람이던 따뜻한 것을 찾는 것은 단지 계절 때문일까?

누구나 나에게 지금 부족한 것, 그래서 채워야 할 것들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걸 채우기 위해 행동한다. 배고프면 음식을 찾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지만, 신체적인 본능 너머의 갈증에도 우리는 물을 찾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반갑게 안아 주는 건 36.5도의 온도가 필요해서일까? 따뜻한 방안에서도 잘 때 굳이 나한테 딱 붙어서 내 머리를 베고 자는 강아지는 생존을 위해서일까? 아들과 밖에서 걸어 다닐 때 손을 잡는 건 횡단보도 앞에서 다 큰 아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물리 시간에(아, 과목 이름조차 아련하다. 세상에 물리라니, F=ma 뭐 이런 거?) '전도'를 배운 기억이 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열 또는 전기가 물체의 한 부분에서 점차 다른 곳으로 옮김, 또는 그런 현상'이라고 나와있다. 

아마도 마음이 차가울 때, 서로에게서 얻은 물리적인 온도가 차가운 마음 한 구석으로 흘러가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한다. 적외선으로 몸을 촬영하면 온도별로 다른 색으로 표시되던데, 우리가 서로를 안았을 때, 손을 잡았을 때 정말로 그 온도가 흘러들어 가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마음의 위치가 아닐까, 거기가 우리가 시리다고 느끼는 부분 아닐까 하는 상상이다. 


물리에서 배운 전도가, 내가 아들의 손을 잡았을 때도 같은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옆에 있으면서도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시린 마음속으로, 잡은 손의 온기가 전달된다고. 그곳으로 온도가 옮겨져 시린 마음을 덥혀 준다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 안의 차가운 곳을 덥혀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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