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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3. 2020

너의 네 돌을 축하해

'반려견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문자를 받았다. 강아지 물품을 사느라 등록했던 쇼핑몰에서 생일 축하와 함께 쿠폰을 보낸 것이다. 태어나고 두 달 정도 지나고 집에 데려온 터라, 이맘때가 생일이라고 생각만 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강아지가 자기 생일을 잊어버렸다고 서운해하지는 않겠지만, 생일인 기념으로 우리 집 막내 이동이 군에 대해서 써본다.


이름: 이동이, 4년 전 엄청 추운 겨울날 데리고 와서 동이이다. 예쁠 때는 '동이야', 혼날 때는 '이동이'이렇게 불린다. 4세 푸들 수컷, 특이사항: 소심 대마왕, 엄마 껌딱지, 방구석 여포, 겁 엄청 많음

강아지를 꼭 키우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과,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들의 지원, 강아지는 무서운데 애기라면 괜찮겠다는 조심스러운 딸의 승낙을 받고, 그래도 결국은 엄마인 내 몫이겠지 각오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반려견을 키우게 되었다.


강아지도 사람 성격을 닮아가는지 엄청 겁이 많고 소심하다.

산책을 갈 때도 늘 가던 집 주위만 15분 정도 짧게 돌지,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려고 하면 안 가겠다고 버틴다. 몸무게로 따지면 나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녀석이 버티기 시작하면 내가 못 당한다.  산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제일 신나서는 그 조그마한 몸으로 썰매견처럼 나를 끌고 집에 간다.  다른 집 강아지들은 한 시간 산책하고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들어 눕는다는데, 엄마 힘들까 봐 일찍 들어가려는 것 같다. 효자라서 그렇다.

그래도 강아지 덕분에 요즘처럼 추워지는 날씨에도 잠깐이라도 같이 나와 코에 바람 쐬고 들어간다.  


내가 뭐라도 떨어뜨리면, 빛의 속도로 달려와서는 냉큼 물어간다.

그 물건이 본인한테 소용이 있을지 없을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물고 튄다. 내가 황급히 쫓아가면 절대로 내주지 않고, 간식이라도 하나 가져와라 하고는 대치상태를 벌인다.  간식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놓고, 강아지가 입에 물었던 걸 떨어뜨리면 아주 빨리 낚아채야 한다. 가끔 너무 가까운 곳에 간식을 투척해서 몸이 느린 내가 미처 이동하기 전에, 강아지가 다시 그 물건을 입에 넣기도 한다. 내가 그나마 하루 종일 가장 격렬히 몸을 움직이는 때이다. 효자라서 그렇다.

협상에 사용하는 물건이 내가 아끼는 연필이기도 하고, 내 머리띠이기도 한데, 오늘은 허탕이다. 안경 닦는 수건이 떨어졌는데 그걸 옳다구나 가져가 놓고는 내가 관심을 두지 않으니 한 구석에 내팽개쳐 두었다.

눈치는 번개 같은 놈.


곁에 와서는 자기 만져달라고 앞발로 툭툭 칠 때면 웃음이 난다.

그럴 때는 영락없이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 아기이다. 여기저기 만져주면 내 팔에 자기 앞발을 턱 걸치고 아예 자리를 잡는다. 강아지가 만족해서 쌕쌕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강아지와 내 얼굴과 맞닿아 있을 때는 나도 평온한 행복을 같이 느낀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일부러 만져주던 손을 멈추면, 홱 얼굴을 돌리고는 바로 낑낑거린다. 사람 말만 못 하지 의사표현 분명한 녀석이다. 어떤 때는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싶기도 하다. 사람 자식이나 강아지 자식이나 호되게 못하는 건 나도 똑같다. 나의 육아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 효자라서 그렇다.


이불이건 코트 건 바닥에 있는 가장 푹신한 물체에 자리를 잡는다.

커버를 새로 씌우려고 이불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벌써 와서 그 위에 앉아있다.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말하고는 쫓아내도, 또 여전히 그 자리. 참 한결같은 녀석이다. 자기는 털도 한 겹 더 입어놓고서는 우리 집 마루가 그렇게 차가운 것도 아닌데 맨바닥에 앉으면 절대로 안 되는 룰이 자기에게는 있나 보다. 역시 너무 귀하게 키웠다. 아무데서나 들어누울 수 있게 강하게 키웠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세상 포근한 이불을 마다하고 내가 자리를 잡으면 항상 내게 바싹 붙어서 내 옆에 앉는다. 나는 그렇게 감촉이 포근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10분을 나갔다 와도 꼬리가 떨어져라 반겨주고, 어디 갔다 왔냐고, 걱정했다고 온갖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애가 닳는다. 내가 외박이라도 하는 날은 나를 기다린다고 현관 앞에 자리 잡고 있다고 딸이 소식을 전해주면, 또 마음 한 구석이 번져온다.


말이 통한다면,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물어보고 싶다. 단지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존재여서 저렇게 나를 따르고 기다리는 걸까? 아닐 거라고 내 마음은 그렇게 바란다. 내가 이동이 군에게 유달리 더 잘해주는 것도 없다. 때 되면 밥 주고 산책시켜주고, 남들 다 하는 거다. 그런데도 그 아이에게 내가 그렇게 절대적인 존재일까?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어지는 듯 저렇게 난리를 펴대니 말이다.


강아지는 남들과 비교할 줄 모른다.

다른 집 강아지 형편이 더 낫다고 나에게 불평할 줄도 모르고, 왜 내게는 더 큰 사랑을 주지 않냐고 투덜거리지도 않는다. 다만, 내 부재에 대해서 아쉬워하고 나를 걱정해 줄 뿐.


내 형편이 어떠하든 강아지는 나를 변함없이 대해준다. 같은 대상이어도 그 사람의 상황,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이 우리에게는 있다. 딸만 해도 내 몰골이 형편없을 때는, '그러고 나갈 거야?'눈치를 주면서 같이 나가는 걸 꺼려하는데, 강아지는 다르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자기 혼자 흥분을 어떻게 할 줄 몰라 현관부터 안방까지 두 번은 왔다 갔다 하고 뛰어오르고 같이 반갑다 해줘야 한참 후에 진정이 된다. 매일 보는 얼굴 뭐가 그리 매번 새롭게 반가운지?


내 아이들 내 가족을 나도 사랑하지만, 어떤 이가 이렇게 우주 전체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는 이기심 때문에, 한 존재에만 내 모든 것을 걸었을 때 내게 올 수 있는 데미지를 생각하고는 은연중에 분산투자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강아지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그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애정을 쏟는 것 대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내 피해를 계산해서 사람을 대하는것 같다. 저녁에 본 사람도, 아침에 봤잖아 하며 안 반겨주고 말이다.

강아지는 기억력이 나빠서 머리가 좋지 않아, 나를 그렇게 매번 진심으로 반겨주는 걸까?

우리 집 강아지에게 우주 전체인 내가(확인해 볼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친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라도 한 생물에게라도 우주 전체인 내가 시시껄렁하다면 좀 그렇지 않나? 이동이 군에게 우주인 내가 좀 더 그럴듯하게 되도록, 그럴리는 없지만 어디 가서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게 뭐라고 하나 해야겠다.


아침에 출근한다고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서둘러 나와버렸다. 오늘 엄마는 아침부터 어디를 가는지 지금도 궁금해하고 있지 않을까? 저녁에 또 열광적인 환영인사를 받고는 개껌 하나 앞에 놓고 첫 출근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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