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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5. 2020

먹는 것에 매번 진심이다.

의식주를 중요한 순서대로 다시 쓰라고 하면, 식의주라고 하겠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는 내게 중요하지만, 어디에 사는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사는 곳은 내게는 기능적이기만 하면 된다. 피곤할 때 누울 수 있고, 음식을 할 수 있고, 서로 독립된 공간이 존재하면 된다.  미적 장치도 필요 없고 내게는 집안을 꾸미는 안목도 재주도 아예 없다. 청소에도 애초에 세운 큰 뜻이 없어서, 바깥보다 집안이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는 게 내 지론이기도 하다.


음식이 가장 맛있는 환경과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까다롭다.

김장을 하는 이유는 맛있는 수육을 먹기 위한 가장 좋은 세팅을 하기 위함이다.  고무장갑을 끼고 양념을 버무리고 절인 배추 한 장을 찢어서 수육을 돌돌 말아 아이들 입에 넣어주는 세리머니를 하는 순간을 위해서 김장을 하는 거다. 그렇게 먹는 수육 맛이 특별하기 때문에 김장을 한다. 김장하는 날 그렇게 배추 반포기는 혼자 먹은 것 같다.


비슷한 이유로 명절 때 전을 부친다. 요즘엔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치니 굳이 전을 안 해도 되고 평상시에도 해 먹을 수 있지만, 전을 부치는 과정은 마치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 같은 거다. 베란다에 처박혀 있던 대형 프라이팬을 꺼내고 지글지글 기름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아, 이제 연휴가 시작이다'라는 행복감도 같이 묻어 나온다.

아이들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내가 새우전의 새우 꼬리를 떼어버리는 실수를 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엄마한테 망친 전 하나 얻어먹고는 총총 사라진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명절에는 나도 그러고 싶어서, 일부러 전을 부친다.


내 음식 메이트인 H양과도 음식에 진심이다.

'야, 이거 당근케이크 네가 좀 더 먹어.' '아니에요. 아까 내가 이만큼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언니 차례예요' 당근 케이크 한 조각의 배분을 놓고 선거 이후 국회의원 의석수만큼이나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간다.


어제 만나서 먹은 홍대 앞 돈가스 집은 사장님 설명이 자세하다. '이거는 트러플 소금인데 많이 짜지 않으니까 돈가스 단면에 찍어서 드시면 트러플 향미가 많이 날 겁니다.' 시키는 대로 따라 하자마자, '오호'하고 터지는 함성. 누가 봐도 트러플 소금 처음 먹는 사람이다. '오오. 신기해. 신기해. 향이 되게 많이 나. 맛있다'를 연발하고 소금을 리필까지 해서 고기는 물론 다 먹고나서도 소금 한 알갱이씩을 집어먹다가 나왔다.

이제는 그냥 소금은 못 먹겠다며 계란 후라이에도 트러플 소금을 뿌려야겠다고 한 번 먹어보고는 온갖 아는 척을 해댔다.

돈가스 집을 나오면서 총평. '맛있었는데, 양이 좀 적다. 그렇지?' 돈가스를 다 먹어치우자마자, 우리는 다음번 방문 때 두 명이 삼인분을 어떻게 무리 없이 시킬 지에 대한 작전에 돌입을 했다. '네가 전화로 '어, 이제 다 와간다고. 그럼 뭐 하나 시켜놓을게'이렇게 말을 하고, 그다음에는 '어, 못 온다고? 어쩌나. 음식을 시켰는데 할 수 없지 뭐'이러는 거야'라고 각본을 짜보았다.  우스갯소리로 한 거고 서로 깔깔거리면서 웃었지만, 왠지 다음번에 실현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배불러서 못 먹을 것 같다고 시키지 말자고 했던 케이크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먹어치우고는, 역시 '못 먹는다'소리는 함부로 할 게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음식이 단순히 생존 본능만을 위해 중요한 걸까?

의식주 중에 음식만큼 사람을 같이 어울리게 하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행위도 없다. 옷도 사회적 의사소통 기능을 하지만 옷 입은 사람을 표현해주는 데 가깝다고 본다. 물론, 회사 워크숍처럼 전체 팀웤을 다져야 할 때 통일된 옷을 맞춰 입긴 하지만, 그때 옷이 하는 기능은 한 행사에서 같이 있었다는 의미 말고는 크게 없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우리는 하나다'라는 깃발 아래 모이는 일에 과민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또한, 음식이 가장 생존에 직결되지 않나 생각한다.  음식을 누군가와 나누어 같이 먹는다는 건, 이전에는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뜻이었겠지. 배고팠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대단하니 말이다. 프러포즈 때 먹지도 못하는 반지 대신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면서 '이 음식을 너랑 평생 먹고 싶어'이렇게 하면 망한 건가? 최소한 지구에서 한 명 나에게는 먹힐 텐데, 내게는 이미 소용이 없으니 괜한 상상이다.


음식을 떠올리면 맛있고 따뜻한 느낌이 엮여 나왔으면 좋겠다.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는 음식이 사람, 순간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면 그만큼 강렬한 느낌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 떠올리면 따뜻하고 웃음 짓는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명절 때 북적거림 따뜻함과 연결된 전 부치는 냄새, 엄마가 내게 돌진해서 입에 쓱 넣어주고 간 김장김치는 늘 최후의 보루 같은 엄마를 연상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한 끼 식사는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고민은 없는지 살피고 시답잖은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의식이라 생각한다.


음식이 물에 젖어 떨리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폭풍우를 만나 흠뻑 젖은 마음에 벌벌 떨고 있다면, 뜨끈한 국수 하나 말아줄까 한다. 후루룩후루룩 국물까지 마시고 소박한 계란지단까지 남김없이 먹고 나면 기운이 좀 날 거라고. 올 때마다 해 줄 테니, 언제든지 오라고.

눈물 나게 억울하고 서러운 친구가 있으면, 같이 양푼 비빔밥을 해서 볼이 미어터지게 먹을까 한다. 냉장고에 남는 반찬 밀어 넣지 않고, 무채, 콩나물, 시금치나물 다 정성스럽게 새로 만들어서 한데 넣고 둘이 같이 전투적으로 비볐으면 한다. 계란 후라이도 어차피 찢어질 운명이지만 노른자 안 터지게 흰자는 튀기듯이 예쁘게 부쳐놓고는 비빔밥에 합류시키면 된다. 양푼 비빔밤 핵심은 계란을 공평하게 나누어 비비는 거다. 두 개 들어갔는데 잘 안 찢어져서 한 사람에게만 계란이 몰리면 안 된다. 중요한 문제이다. 인생 뭐 있니? 이렇게 섞이면 다 비슷해지는데, 맛있으면 그만이다. 앞뒤도 안 맞는 말을 떠들어대면서 양푼을 싹싹 비우고 나면 뭐 때문에 억울했는지 잠시 잊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음식에 또 사람에 늘 진심, 투머치 진심일 테다.


그리고, 정말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해본다. 음식을 제때에 먹는다는 건 중요한, 하지만 우리가  종종 잊어먹고 있는, 사람답게 살아남기 위해 기본적으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이 글을 쓰면서 끄덕끄덕하면서 제일 부끄러운 곳에 왔다. 결국은 이 깨달음을 얻게 하려고 하느님이 내 글을 내 손가락을 인도하셨나 생각이 든다.

올해 유난히 춥다고 하는데, 따뜻하고 음식이 넘치는 내 집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내 문 밖에 떨고 있고 배고픈(말 그대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라고 해야겠다. 그게 진정한 '음식'이 가져야 할 자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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