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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6. 2020

우리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들었다.

대면수업인데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선생님, 학생 모두 수업 내내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진행했다. 내게는 낯설고도 적응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이다. 선생님과의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선생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선생님 말에 끄덕끄덕 호응도 하고, 눈도 맞추고, 중간에 질문도 많이 해야 나는 수업이 재미있다. 질문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고, 궁금한 걸 못 참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수업에서는 질문하기가 어려웠다. 마스크라는 일차장벽이 있기도 하고,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꼈어도 말을 많이 하면 안 되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규모 수업이고 널찍이 앉아있어서 필요한 질문은 했지만, 내 질문을 무언가 가로막는 느낌이 수업내내 목에 걸린 생선가시같이 나를 계속 불편하게 했다. 질문을 하고 싶은데도 마스크 때문에 하지 못할 수 있구나. 얇은 가림막 하나가 질문을 하려는 의지를 꺾을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질문하는 분위기 자체로 많이 놀랐던 적이 있다.

이전 회사에서 해외학회 때문에 미국으로 출장을 갔었다. 외국 사람이어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많이 봐야 삼십 정도 되었을 여자 의사가 발표를 하는 세션이었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미 놀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스터 발표 등 작은 세션을 제외하고, 이렇게 메인세션에서 다른 시니어 스태프를 두고 주니어가 발표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발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사람들이 홀 가운데에 있는 마이크를 두고 줄을 서기 시작한다.  십분 기다린 후에 마지막으로 어느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비슷한 연구를 이전에 했는데,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나의 의견이야'정중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발표자는 시크하게 '땡큐'하고 끝낸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배가 있는 발표자 세션에도 그 보다 어린 사람이 이러니 저러니, 뭐는 이상하니 하며 피드백을 하면 '고맙다 그건 내가 생각 못했다' 대답해준다.

그 넓은 홀에서 느꼈던 자유로운 분위기와 질문하는 사람, 질문받는 사람의 태도는 내게는 아주 쇼킹한 문화충격이었다. 강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홀의 공기와 분위기는 아직까지 생생하다.


우리나라는 왜 안될까? 우리나라 학회에서는 일단 질문하는 분위기가 조심스럽다. 특히 발표자가 시니어인 경우에는, 발표자에게 도전하는 분위기는 당연히 안되고 질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아주 완곡하게 피력을 한다. 발표자가 어린 경우는 질문을 받는 시간에 안쓰러울 만큼 긴장을 해서, 시니어가 질문이라도 하나 할라치면 그 공간의 분위기도 같이 얼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존댓말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항공사에서 항공사고 원인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니, 잘못이 발생했을 때 부기장이 기장에게 '이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을 제때에 하지 못하는 이유가 존댓말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나서 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상상을 해보면 존댓말로, '기장님, 이것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많은 저항과 주저함이 느껴진다.


내가 비교해 본 두 학회 모습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일단 호칭으로 직책을 앞에 붙여야 하고, 존댓말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챌린지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이름으로  시작하니까 훨씬 분위기가 수평적으로 된다. 일부 회사에서 서로를 직책 없이 이름으로만 부르게 하는 사내문화를 장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를 달리해서 말을 하면, 주장을 펴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곤 한다. 영어로 말하면 반대의견을 이야기할 때도 마음이 편하고 더 직접적이 된다. 그래서, 종종 영어학원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자 수강생과 젊은 여성 수강생간에 영어로 디베이트를 하면서 진짜로 다툼이 생긴다고 들었다.


내가 질문하기를 주저하는 게 왜인지 생각해보았다.

얇고 손바닥만 한 마스크 하나가 입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차단이 된다. 아주 간단한 물리적인 장벽만으로도 우리는 멈칫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장벽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훨씬 더 견고하다. 나는 무엇이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과정은,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아, 내가 지금 질문을 주저하고 있구나'알아차리는 것.

언어를 바꿀 수는 없으니, 한국말로 존댓말로 또박또박 도전하고 질문하는 방법을 깨닫는 수밖에는 없겠다. 그래서 더 이상 언어가 적실한 질문을 던지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사회에서 커가지 않을까 싶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듣는 수업이 단어와 띄어 쓰기에 대한 내용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컴퓨터가 지적해주는 맞춤법 검사를 온전히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많이 틀리기도 한다고.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를 누르면 75개 이렇게 떠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통쾌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띄어써야 하는데, 붙여 쓴 경우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내 글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단어 밑 붉을 줄에만 의존하지 않겠어. 프로그램은 신경도 안 쓸 다짐을 오늘 이 글부터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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