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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7. 2020

Life goes on을 듣고 울다

진심이 주는 힘에 소름이 돋다.

나는 반백 아미이다 (brunch.co.kr)

젊은 아미처럼 콘서트를 쫓아다니고 목이 터져라 노래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방탄을 응원하는 아미이다. 이번 BTS의 새 앨범 'Be'를 듣고는 처음에는 조금 김이 샜다. 'Dynamite'가 워낙 화력이 세서 그랬는지 좀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몇 번 돌려 듣다가 잊고 있었는데, 오늘 'Life goes on'뮤직비디오 reaction 동영상을 보고는 지금 찔찔 짜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 상황이 내게는 그렇게까지 암울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마스크를 끼고 다녀서 불편하긴 하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밖을 나간다. 친구들을 예전처럼 자주 못 보긴 하지만, 가끔은 만나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떤다. 딸이 원격수업을 듣느라 한동안 집에 있을 때는 한 집에서 식구들이 모두 복닥거리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웬만히 큰 녀석이라 젊은 엄마들처럼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Life goes on이 내게는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를 보는 다른 나라 아미들의 반응을 보고는 울컥했다.

 마음이 움직였던 부분은, BTS가 코로나로 힘든 아미들을 위로해주려고 이 노래를 만들었고, 아미들은 이 뮤직비디오를 보자마자 어떻게 방탄의 진심을 여과 없이 전달받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진심은 이렇게 통하는 거구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진정으로 마음을 전하고자 했을 때, 언어와 세대를 뛰어넘는 힘을 보고는 소름이 끼쳤다.


사실 뮤직 비디오 reaction영상을 보는 데는 영어실력이 많이 필요 없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대부분의 시간이 비명과 감탄사로 채워지거나, 주로 나오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beautiful, love, so good, OMG 등이다. 한국말로 한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나라를 초월해서 아미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반응은 '이런 젠장 너무 잘생겼잖아'이다.

#1. 뮤직 비디오 첫 장면부터 아미들은 이미 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건 슬픔과 통하나 보다. 나는 뷔의 얼굴이 덤덤해서 슬펐다. 힘든 마음을 다 쏟아내기보다는 '여기 넘어져 있는 나'라고 말하면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뭔가를 꾹꾹 누르고 있는 듯한 뷔의 표정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느끼는 듯 했다.


#2. 자전거를 좋아하는 RM이 안장 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훑는 장면, 모든 게 멈춰버린 세상에서 이전에는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나중에 못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친구들끼리 같이 먹고 웃고 했던 시간들, 가족들끼리 떠나는 여행도 그리운 것이 되었다. 마스크 없이 겨울공기 냄새를 맡는 것도 이제는 가끔씩 누려보는 행복이다. RM의 자전거 같은 존재들이다


#3. 어디 나갈 일이 없으니, 이렇게 방구석에서 시간을 노닥거릴 수 밖에는 없다. 그래도 기쁠 때 슬플 때 이렇게 모이는 것은 가족밖에는 없는 듯하다. 방탄이 가족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장면을 보는 아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거 나 같아. 우리도 좀 전에 저렇게 피자 먹었잖아'

방탄이 전하려고 했던 마음을 잘도 받아내는 아미들이다. '방탄도 이 힘든 때에 우리와 같구나.' '그래 힘들 때 저렇게 복닥거리는 게 가족이지. 작은 일에 웃고 맛있는 거 먹고'

나는 솔직함의 힘을 생각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였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느끼는구나. 그것도 아주 강하게 말이다.

황금막내 전정국이 이 뮤직 비디오를 감독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진정성이라고 했다. 그저 하는 말이려나 무심히 들었는데 영상을 보고 다시 생각했다. 화면 하나하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구나. 그래서 그걸 보는 전 세계의 아미들은 그렇게도 잘 알아보는구나. 신기하기도 했다.


#4. 나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장면을 외국아미들은 나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  나는 그냥 잠실 근처를 지나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말이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콘서트를 했을 잠실 스타디움을 지나가며 보는 뷔.

코로나 상황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지내는지. 가수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팬들과의 만남,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연일 무릎을 꿇고 있다. 백신 소식이 희망적으로 들려오니, 이번 코로나는 어찌어찌 끝을 낸다고 해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들게 된다.


#5. 방안에 있는 다른 멤버들이 잠에 빠지고, 진이 눈을 감았다가 뜨면 공연장이 된다.


#6. 여기서부터 아미들은 본격적인 눈물바다를 이룬다. 남자도 울고 할머니도 울고, 꺼억꺼억 대성통곡을 하는 아미들도 많다.

관중 대신에 아미밤만 빼곡히 있는 빈 관중석을 뒤에 두고 방탄이 노래를 하고 있다. 위로를 건네고 있다.

괜찮아질 거라고. 그래도 우리의 대단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들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화상이지만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만나지는 못해도 전화로 수다를 떨어보고,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는 빈 약속이 지금은 너무도 소중하고, 차들은 어디론가 향하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우리는 사랑하고.


나도 울었다. 아미들의 반응을 보고는.

요즘처럼 진심이 부정당하고 통하지 않는 때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 진심이면 뭐하나, 하나 알아주지를 않는데. 나만 괜히 헛짓한다고, 나만 바보 된다고, 이제부터는 멍청하게 진심 따위는 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방탄이 나를 한 방 보기 좋게 먹인 것이다. 노래와 영상이라는 매개를 통해, 방탄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위로를 진심으로 던져주었고, 아미들은 방탄의 메시지를 점하나 생략하지 않고 온전히 흡수하고 이해했고, 울면서 진심으로 방탄에게 감사했다. 나는 방탄이 주는 진심의 힘이 놀라웠다. 그 진심은 방탄이 애써 감추지 않는 슬픔, 좌절을 솔직하게 드러낸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한껏 힘을 줄 수도 있었다. 희망을 가지라고, 그래도 우리는 끝끝내 이길 거라고. 비장하게 눈에 힘을 주고 그렇게 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탄은 자신들도 느끼는 무기력, 좌절,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잔잔하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나도 불안한데, 그래도 우리 하루하루 잘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방탄의 목소리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파자마처럼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미인 내 글도 방탄을 닮아 솔직했으면 한다.

나는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다. 어려운 단어를 활용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진실한 글을 쓰고, 그래서 방탄이 그랬던 것처럼 내 진심을 누군가가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Life goes on처럼 담담하게 슬픔과 위로를 동시에 전할 수 있는 글을 써 보리라 생각해본다.


진심이 부정당하는 사회라고 생각했던 반백 아미인 나를, 스무 살 넘은 일곱 청년들이 호되게 가르친다.

진심은 통하는 거라고. 그래서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거라고. 눈물 빼게 가르친다.

방탄이 고맙고, 아미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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