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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8. 2020

운동을 안 하는 백만스물두가지 이유

운동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관심이 없다 보니 아는 지식도 바닥이다. 남편은 얼마 전에 끝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보느라고, '아구 저걸 놓쳐.' '한 방 쳐라' 난리던데 나는 야구팀이 몇 개며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야구팀은 해태, 롯데, LG 뭐 이 정도?

야구장에서 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결혼 전에 막냇동생 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야구경기를 보러 갔었는데, 룰도 잘 모르겠고 지루해서 살짝 졸았나 보다. 동생하고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통에 잠이 깨서, '왜 무슨 일인데?' 했던 기억이 있다.


야구가 이러니 축구라고 다를까? 오프 사이드가 무엇인지 4년마다 한 번씩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남편에게 물어본다.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려서 온 나라가 '대한민국' 함성으로 가득 찰 때였다. 아직 애기였던 큰 애를 등에 업고 그때는 정말 축구경기를 안 보면 안 될 것 같아 남편하고 경기를 봤다. 골인 줄 알았는데 오프 사이드란다. '그게 뭔데?' 경기에 집중하느라 마음이 급한 남편이 빠르게 답했다 '공보다 사람이 먼저 가면 안 되는 거야.' 혼자 생각해 보다가 하필이면 중요한 타이밍에 나는 또 물어봤다. '왜 안되는데?' 드디어 남편이 화가 나서는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그럼, 너는 선수가 골대 앞에 있다가 공이 날아오면 골을 넣으면 좋겠어?' 분위기 상 또 물어보면 이건 부부싸움 각이다. 알아듣는 척 하긴 했지만, 나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안될 건 또 뭐야'

나는 아직도 오프 사이드가 뭔지는 알겠는데 왜 안 되는 지는 잘 모른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런 게 지구 상에 존재하는구나' 그거면 나에게는 충분한 지식이다.


아주 뛰어난 몸치이다.

국민학교 운동회 때, 집에 가면 엄마가 속이 상해서 내게 뭐라고 했다 '달리기 할 때, 다른 애들은 잘만 뛰던데 너는 왜 걷는 거야?' '나도 뛴거라고요' 학교에서 체육시간이 제일 싫고 그중에서도 피구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공을 안 아프게 빨리 맞아서 저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공을 던지고 맞추고 하는 거에는 아예 재능이 없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써서 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수영이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내가 성적표에 체육을 '양'을 받아왔더니 치맛바람 거센 엄마가 충격을 받고는 나를 학교 수영부에 넣어버렸다. 그 당시로는 드물게 학교에 야외 수영장이 있고, 수영부가 따로 있던 학교였다. 내가 물이 무서워서 수영장 한 구석으로 도망가고 있으면, 극성인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가 나를 잡아서는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덕분에 나는 수영은 마스터할 수 있게 되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유일하게 하고 싶고 즐기는 운동을 가질 수 있었다.

물속에서 중력에 자유로워진 몸을 느끼고, 수영을 하고 나서 기분 좋은 노곤함을 느끼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수영을 을 텐데. 내가 운동을 안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추가된다.


운동만 하면 꼭 다친다.

뭐든지 안 하면 안 했지 할 때는 또 전력 추구이다 보니, 운동을 하면 재능이 없는 걸 메꾸기 위해서 무지 열심히 하다가 다치곤 한다.  라켓볼을 배울 때는 운동 후에 손이 벌벌 떨려서 글씨를 쓰기 힘든 정도였다. 방송댄스를 배울 때는 무리하게 스트레칭을 하다가 인대가 늘어나서는 한동안 절뚝거리면서 다녔었다. 헬스를 엄청 열심히 할 때는 무게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생겨서 손목 아대 허리 보호벨트까지 차고는 매일 무겁게 웨이트를 들곤 했었다. 아니다 다를까, 하체운동을 하다가 햄스트링을 다쳐서는 그 이후로는 헬스장 근처에도 안 간다. 축구 선수 중에 햄스트링을 다치는 사람이 많다는데, 오프 사이드도 모르는 내가 축구선수와 공통점이 있다니 놀랄 일이다.

이 정도면 운동을 싫어하고 못 하는 사람 중에서는 내가 운동하다가 제일 많이 다쳐본 사람 아닐까 싶다.


나이가 오십이 되고 나니 몸에 미안해진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내 몸도 들여다보았어야 하는데, 혹사를 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무심하거나 했으니 내 몸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젊었을 때는 혹사하던 무심하던 그럭저럭 버티던 몸이, 이제는 여기저기 고장이 나는 걸 느낀다. 젊었을 때는 취미로 하는 운동을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할 판이다. 마음은 '운동을 해야지'하고 매일 마음을 먹는데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려니, 오래전에 절교했던 친구에게 갑자기 화해를 청해야 하는 것처럼 어색해서 하루하루 미루기만 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그 첫걸음을 떼는 게 왜 이리 무거울까?


꾸물거리기만 하는  엉덩이를 어떻게 한 대 걷어차 줄 수 있을까?

정말로 움직이면 안 될 만큼 결정적인 사건이 있던가. 그런데 대부분은 그런 결정적인 사건은 나쁜 일이기 때문에 그전에 움직이는 게 더 좋겠다.(그걸 아는 사람이 이러고 있다)

내 무거운 엉덩이를 방바닥에서 떼어내어 잡아 끌만큼 힘도 세고 무서운 사람이 있던가. 예전에 PT를 하면 돈이 걸린 문제여서 열심히 했었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거. 나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거.

세상 만방에 내 계획을 공표하던가. 연예인들이 '다이어트해요' 방송에서 말하고 나면 뒤로 돌아가기 힘들듯이, 나를 알만한 사람에게 '나 이제 운동해. 혹시 나 운동 안 하는 거 보면 나 혼내줘'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거다.


그래서, 여기에 공표를 해 볼까 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누군지 정확하게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런 다짐을 나눈다는 게 더 부담이 된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으면 좋겠다. 운동을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운동앱을 깔아서 자신의 다짐을 공표하고 일종의 가상 공동체에서 서로의 성과를 공유하고 격려하지 않나.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어서 나뿐 아니라 나와 비슷하게 다짐만 하고 시작을 못하는 다른 사람 엉덩이도 걷어찰 수 있었으면 한다.


운동을 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얼마 전에 아들이 자기가 써보니 좋다고 샤오미 워치를 추천해서 샀다. 시계를 차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존에 갖고 있던 시계는 아픈 손목에 너무 무거웠던 참이었다.

핸드폰과 연동이 되어서 전화가 오면 같이 진동이 울린다. 하지만, 전화는 전화기로 받아야 한다.

카톡이나 메일이 오면 시계 화면에 같이 뜬다. 하지만, 시계 화면이 작고 그보다 더 작은 글씨는 읽기가 힘들어 결국은 전화를 다시 찾아서 내용을 확인을 해야 한다. 결국은 카톡이 왔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신통한 기능이 하나 있기는 하다. 시계를 차고 자면 수면패턴과 숙면정도를 파악해서 알려준다. 수면시간이 부족한지, 깊은 잠이 부족한지 알려주는데  시계를 차고 자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활용을 못하는 기능이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 샤오미를 쓰는 사람들이 좋게 평점을 주는 운동 시에 얻는 이점이 많다는 거란다. 운동 종류별로 운동 강도와 심박수를 측정해주는 기능이 있다. 현재 내게는 무용지물인데, 기왕에 산 샤오미 다른 기능이 별반 신통치 않으니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어거지로 명분을 만들어냈다.


그래 거금 오만 원을 주고 시계를 샀으니 운동을 꼭 해야겠지

무엇을 해야 하는 이유가 개수로 결정되는 건 아닐 거다. 운동을 안 해야 하는 이유가 백만스물두개여도, 운동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 한 가지가 있으면 하는 거다.

결국은 그 이유에 내가 부여하는 무게일거다. 시계 하나때문에 그동안 마음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아 두었던 운동을 시작하지야 않겠지만, 눈에 잘 띄는 손목에 내가 운동을 해야 할 명분을 차 본다. 그 명분이 충분히 무거워지기를.


몇 달 후에 운동 결과를 자랑스럽게 여기에 보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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