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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9. 2020

생리통이 반갑다.

하루 종일 으슬으슬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더니 생리가 시작되었다.

반갑다.

지금도 머리가 눌리듯 아프고 배도 안 쪽에서 할퀴는 것 같고 몸이 찌뿌드하지만 반갑다.

나이 오십, 어느 달이든지 폐경이 되어도 놀랍지 않은 나이이다. 내 연배에 이미 폐경이 된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PMS(생리 전 증후군) 오면 '아, 이번 달은 아닌가 보다'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평생 없었으면 했던 생리통도 반갑다. 마치 얼마 남았는지 알지 못하는 저금통에서 동전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이번 동전이 마지막일까? 하나 더 있을까? 그런 마음인 것 같다.

몸이 젖은 솜 같은 이런 상태 자체를 반기는 건 아니다. 다만, 폐경 이후에 맞이할 갱년기가 더 무섭고, 막상 갱년기가 닥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하기 때문이다.


어느 집은 아이의 사춘기를 엄마의 갱년기가 이긴다고 한다.

사춘기나 갱년기나 피할 수 없고 강력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사춘기도 본인이 자신에게 닥치는 변화를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갱년기에 나타나는 변화도 그렇겠다. 오십을 같이 지내면서 그래도 내 몸과 나 자신을 웬만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낯선 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걱정이다.

갱년기를 겪는 경험담을 들어보니, 사람마다 증상도 다르고 심한 정도도 다 달라서 더 가늠을 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오프라 윈프리가 책 읽기가 싫어졌다고 하니, 그것도 걱정이다. 아직 닥치기 전이니 지금 책을 많이 읽어둬야 하나 별 생각을 다한다.


어차피 닥칠 일이고, 가늠이 안된다면 일단 만나보고 맞짱을 떠보기로 한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면 걱정이 아니라고 했던가. 일단 오늘은 닥친 생리통을 해결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갱년기는 접어두기로 한다. 해야 할 일은 잘도 미루면서,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미루지도 않고 당겨서까지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란.

힘들면 힘들어보자.

모든 문제를 즉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이다. 예전에는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고, 최선을 못 구하면 차선, 차차선이라도 구해서 내 눈앞에서 당장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곤 했다. 직장에서의 일은 그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고, 또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 그것도 암초처럼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르다가 어느 날 꽝하고 만나자마자 좌초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만나면 그건 차원이 다르다.


인생사 힘든 문제는 힘들 만큼 힘들어야 끝이 나는 것 같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민하고 애를 쓰는 과정은 늘 있겠지만, 조바심 낸다고 빨리 끝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닥쳐보고, 나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게 아니니 힘들면 힘들어보고. 다만, 문제를 직시하는 것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똑바로 쳐다보기. 무섭더라도 문제와 그걸 맞닦뜨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다 보면, 좀 덜 힘들어지고 생각나지 않던 해결책도 떠오를 때가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속담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언제나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나 자신과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지고 깊이가 있어질수록, 폭풍우에도 덜 흔들리고 좋은 모습으로 나이가 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갱년기를 덜 겪을까?

오늘 나는 처져있는 나를 봐주고,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겠다. 오늘 나를 살피다 보면, 내일의 나도 살펴지겠지.

할 일을 오늘 하고, 걱정을 내일로 미루겠다.

걱정을 오늘 하고,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보다는 현명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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