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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30. 2020

우리 부부는 OO한 사이이다.

다정

땡. 틀렸습니다.

우리 부부를 누군가가 처음 본다면 방금 싸우고 나온 부부로 생각할 만큼, 우리는 건조하게 지낸다. 두 달 백수하다가 요즘 재택을 하고 있는 나도 거의 집에 있고, 원래부터 집에서 일하는 남편도 집에 있으니, 우리 부부가 24시간을 한 공간에 있는데도 말은 고작 몇 마디뿐이다. 딸이 집에 와있는 주말 동안에는 그나마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우리끼리만 있는 주중에는 서로의 기척으로 일어났구나, 뭘 하는구나 짐작하는 것으로 알아야 할 정보는 충분하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서로의 행방에 대해서 궁금할 것도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이유도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는 이러저러한 서로의 속내를 나누는 일에는 서툰 것 같다. 꼭 필요한 말들, 한 집에 사는 동거인으로서 알아야 할 정보만 나누고 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이야기가 오고 간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남편은 성격상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방문을 굳게 닫고 자신만의 공간에 칩거한다. 나는 닫힌 문과 냉랭해진 공기를 보면서 '아, 하는 일이 잘 안되는구나'짐작할 뿐이다. 얼마 전부터 일이 좀 풀려서 방문이 열리고 남편이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는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고, '다행이다'생각할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대화 양이 우리 부부에게는 최대 인지도 모른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속에서, 그래도 나는 남편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나에 대한 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되었지.

남편은 지금 최고로 수다를 떨고 있는 거다. 그동안 방문을 열 수 없었던 남편이 느꼈던 무거운 마음,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던 힘들었던 뒷모습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몇 안되는 대화도 즐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


애틋

딩동댕. 맞았습니다. 누가 결혼생활을 오래 하면 어떤 감정이 드냐고 물어봐서, 측은지심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면 그건 심장병이라고 했었는데. 결혼 초에나 멀리서 남편을 보면 좋아서 달려갔었지, 이제는 평정심(?)을 얻은 지 오래되었다. 좋아서 두근거리는 마음 대신에 애틋한 마음이 차지한다.


젊었을 때 남편은, 보수적이고 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이전보다는 그 날카로움이 무뎌진 편이다. 갈등을 되도록 피하려는 우리 둘의 성격상 다툼이 많지는 않았지만, 한 번 부딪히면 상황은 심각해지곤 했다. '사네, 마네'하다가는 수그러들곤 했는데, 아들이 사춘기를 된통 세게 겪을 때는 상황이 더 심각했었다. 가족이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면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갈기갈기 찢어진 가족을 어떻게든 서로 붙들어 보려 했던 내가 '이제 그만 손을 놓을까?'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픈 시기를 통과하면서 우리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너무 다가가지도 너무 물러서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다. 지금 남편은 예전에 비하면 우리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와있고, 좀 더 많이 이해하고,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물어보려 한다.


같이 산지 이십 년.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있으니, 내게는 가장 긴 시간을 같이 보낼 사람일 거다. 남편을 보다가 부쩍 많아진 흰머리, 구부정한 등판을 보면서, '저 사람도 많이 늙었구나'느낀다. 남편도 나를 보면서 같은 생각이겠지. 서로 같이 나이를 들어가는 좋은 점이다. 서로를 거울삼아 보면서 나의 약해진 모습을 상대방에게 발견하고 동시에 서로가 짠하고, 그러면서 느긋해지고 여유가 있어진 듯하다. 


사람이 나이 들면서 약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끔찍한 일들이 생길 거라고 상상해본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약함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고, 그게 나이 들면서 가지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기회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저절로 겸손해지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해진다.

세월 앞에서 현명함을 얻기를 바라본다.


나이 오십 이제야 남편이 편안하다.

젊었을 때는 별 일이 없을 때도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이 있었다. 가끔 그 불길한 마음을 증폭시키는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로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큰 폭풍우를 헤치고 나온 지금, 나와 남편은 좀 더 편안해졌다.

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 다 바뀌어도 남편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과 타협하지 않는 본인만의 생각이 너무나도 견고했고, 나는 그 벽에 부딪힐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폭풍우를 거치면서 남편은 유연해졌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거면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어린 아들에게 소리를 질러서, 그 일이 나중에까지 아들에게 상처로 남아있었다. 본인에게도 아들에게도 울면 안 되는 건 남편에게는 절대로 타협하지 못하는 금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남편이 얼마 전에 내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나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놀라기도 했고, 사람이 이렇게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거였나 허무하기도 했다. 이 부분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나 혼자 굳게 믿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세월을 너무 우습게 봤구나. 이 사람도 제대로 나이 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많이 고민하고 아파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 주면서 뭔지 모를 편안함이 들었다. 비로소 우리 둘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위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십 년을 돌고 돌아 우리 부부가 맞닿아 있는 연결고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힘들 때 믿어주고 기다리는 법을 아들에게서 배웠고, 남편에게도 써본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없어도 좋아질 거야'라고 믿어주고 기다리면 그 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아들에게서 배웠다.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에게도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건 똑같이 통했다. 이 세상 아무도 안 믿어줄 때 기다려 주기, 그동안 애썼다 말해주기, 모든 사람들이 남들에게서 바라는 것인가 보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이런 것을 얻으리라 기대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두 남자에게서 다 통했으니, 최소한 우리 집안에서 성공률은 100%이다. 효과를 알았으니 앞으로 계속하기만 하면 된다. 말이 쉽지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해 주는 것, 서로 믿어 주는 것이 가족들끼리의 의리 아닌가 싶다.


남편 하고도 이제는 설렘보다는 의리로.

나는 남편에게 형제애를, 남편은 아마도 내게 자매애를 느끼면서 남은 인생 살아보려고 한다.

화장실 갔다가 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등짝이 오늘따라 더 짠하다. 두근거림도 심장에서 오는 거지만, 짠한 마음도 심장에서 온다.

그런 걸 다 통틀어 사랑이고 정이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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