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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03. 2020

우리 아이들의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수능날이다. 내가 다 긴장이 된다.

올해 수능은 코로나로 예년과 또 다른 모습인 것 같다. 격리하고 있는 학생들도 수능을 무사히 쳐야 하고, 모든 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긴 시간 내내 시험을 쳐야 하니, 긴장이 더 될 것 같다. 워낙도 수능날이면 듣기평가할 때는 비행기 이착륙도 연기되고, 수능생 가족뿐 아니라 온 나라가 긴장하고 초조해하지 않나. 이제 시작이니 끝나는 시간까지 하루가 잘 흘러가기를 바라본다.


수능에서 꼭 성공하라고 하기보다,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환호하는 학생도 있고 낙담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치르는 큰 시험 앞에서, 성공이냐 실패냐 두 갈림길만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갈림길의 이름도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능은 말 그대로 학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거지,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무한할 수 있는 능력 중에, 극히 일부분을 한정되게 시험이라는 다소 잔인한 방식으로 볼뿐이다.

아직 너무나도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이 이 한 번의 시험 결과를 자신의 인생 전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능결과가 좋더라도 그 사람 인생이 다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나쁘더라도 역시 인생과 같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매년 수능 때마다 안 좋은 뉴스가 나오지는 않을까 마음이 오그라든다.

고2인 딸이 작년 이맘때, 학교에서 들었는지, '수능 보는 곳에서 감독관 선생님들이 화장실을 다 확인한대. 거기에서 뛰어내릴까 봐'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는 심장이 다 철렁 내려앉았었다. 확률상 세상에는 물질적(공부도 결국은 물질로 환원된다고 보면, 공부도)으로 성공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 사회는 합격선 안으로만 밀고 들어가는 데 관심이 있다.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 모두가 마음이 안 다칠 수 있을까? 매년 이맘때마다 기도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느님

우리 아이들을 모두 지켜주시고,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낙담할 아이들 옆에 더 머물러 주십시오.

하느님의 뜻대로, 우리 모두의 그릇대로 훌륭하게 쓰일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릇이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를 알게 하는 데에는 수능은 그저 수많은 길 중에 하나일 뿐, 전체가 아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 모두가 얼마나 가능성이 많으며, 자신의 생김새대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는지 아이들의 인생에서, 특히 오늘 가슴 벅차게 느끼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괜찮다 말하고, 실패라는 말 대신에 내게 더 잘 맞는 다른 길, 내 손과 더 잘 어울리는 쓰임새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한 아이가 수능이 끝나고 너무나도 실망해서, '나는 이제 끝이야. 나한테는 아무 길도 남아있지 않아' 생각하거든, 그 아이 옆에 꼭 붙어서 '너는 이제 열여덟이야. 한 번 무릎 꿇고 넘어진 건 다시 일어나면 돼. 그럼, 넌 그냥 수능 점수 하나보다,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운 거야.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라고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해 지기 전에 집으로 같이 와 주십시오.

한 아이의 머리카락 한 끝도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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