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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07. 2020

방탄은 당연하지 않다

2020 MMA 방탄 영상을 보고 나서 몸져누웠다.

17분 영상을 보면서 소름이 몇 번이 돋았는지 모르겠다. 뒷머리가 쭈뼛하더니, 또 다음에는 목덜미, 어깨 순으로 몸이 떨려왔다. 그러더니 정말로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덜덜 떨려서 약까지 먹고 한 숨자고 일어났다.  우리가 놀라운 장면을 보았을 때 뇌에 전달된 파동이 정말로 몸도 공명을 해서 파동이 말 그대로 내 몸을 붙잡고 흔들었던 것 같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긴 했지만, 몸져 눕기까지 한데에는 방탄이 그 방아쇠를 당긴 것 같다. 내가 누구 때문에 몸져누워본지는 20대 때 남자 친구한테 차이고 나서는 이십여 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이래저래 대단한 방탄.


첫 무대는 black swan
출처: 멜론 2020 MMA

물이 고여있는 호수로 만들어진 무대에서 정국&지민, 진&RM, 제이홉&뷔가 쌍을 이뤄서 흑조들 사이에서 춤을 춘다. 수온이 낮지는 않았을까 이 추운 겨울에 우리 애들을 물에 젖게 하다니, 일순간 화도 났지만 너무 아름다운 화면에 애들 걱정은 금세 잊어버렸다(이런 얄팍한 팬심 같으니). 나중에 또 돌려보니 방탄도 대단하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흑조들도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그 각을 맞춰야 하니 얼마나 애를 썼을까? 검은 옷과 마스크 뒤에 가려진 그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두 번째는 ON
출처: 멜론 2020 MMA

ON 무대는 시작도 하기 전 첫 장면에서 이미 나는 전율했다. 슈가를 위해 비워둔 자리. 그리고 오른쪽에서부터 한 명씩 멤버들을 차례대로 클로즈업하면서 지나오다가 진 옆 빈자리를 당기듯이 흡입하면서 똑같이 흐르던 속도를 바꿔버린다. 우리로 하여금 슈가가 없는 진공을 느끼게 만들고는 뷔에서 클로즈업이 끝이 난다.  뮤직비디오에서 익히 봐왔던 안무와 노래를 충실히 하면서도 우리에게 다른 메시지를 하나 툭 던져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나와 늘 있어서 계속 그럴 줄만 알았던 사람이 옆에 없을 때 느끼는 빈 공간이 갖는 무거움을 방탄은 on에서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비어있음을 못 참아하는 것 같다. 방탄에서 슈가는 어깨가 다시 회복되면 다시 빈자리를 채우겠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상실을 다른 것으로 서둘러 메꿈으로써 보상하려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분히 그 빈자리를 느끼고 슬퍼해야 다. 우리가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는 만큼 빈자리는 많이 슬프다. 그 자리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우리는 금세 다른 곳만을 쳐다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슬퍼하기, 빈자리를 그대로 놓아두기, 그렇게 비어있는 마음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그 공백은 다른 대체로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거라고.

빈채로 그냥 두기.


셋째는 'Life goes on'
출처: 멜론 2020 MMA

가상은 가상이다. 진짜를 대체할 수는 없다.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아미의 영상이 방탄과 함께 하고 있지만 이걸로 만족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나마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아미와 같은 무대에 있고 싶어 하는 방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면서도 슬프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구나'를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은 이전과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을 못 만나면서 진짜 사람이 화면 속 사람으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화면을 통한 대화는 같은 공간에서, 말하는 사람이 짓는 표정을 보면서, 미묘한 말 뜻을 느끼면서 하는 대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가상이 늘어날수록 진짜에 대한 갈증이 더 커져가는 것 같다. 결코 가상으로 채워지지 않는 많은 '진짜'를 그리워하게 된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배움이라면, '진짜'의 소중함, 많은 것들 중에서 무엇이 진짜인지를 구별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인 것 같다. 지금 우리가 헛헛해하는 것들이 진짜이다. 친구, 대화, 소통, 위로, 친구와의 맛있는 한 끼, 말없이 등을 토닥거려주기, 만나자마자 와락 안아주기. 그런 것들이 진짜이다.

방탄에게는 팬들과의 만남, 정말로 살아있는 무대,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함성 이런 것들이 진짜이겠지.

한편, 안도하는 마음도 든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가짜가 진짜를 대신할 수는 없겠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가상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겠다. 체온이 주는 온기와 포옹이 주는 숨 막힘을 줄 수 없으니 말이다.

빨리 진짜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마지막 무대 'Dynamite'

아이들의 의상에 맞추어 조명이 바뀌는 것도 재미있었다.  조명 스위치를 누르는 담당이 있어서, 딱 멤버가 바뀌고 노래 소절이 시작될 때 정확하게 버튼을 누르는 건지 괜한 궁금증이 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오마쥬 하는 듯한 중간의 댄스 브레이크에서 제이홉이 모자를 쓰고 일렬로 멤버들이 뒤에 줄을 섰는데, 한 명씩 그 대형에서 삐죽이 벗어나는 장면도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방탄의 무대는 재미있어서 좋다. 보는 우리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방탄도 무대를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서 같이 즐겁다는 게 좋다.

이 무대를 준비하느라 방탄은 많이 힘들었겠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온전히 즐긴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사람들이 '노오력'이라고 말하던 게 생각이 난다. 요즘은 너무 힘든 세상이라 그냥 노력만으로는 안되고, '노오력'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세상 살기가 녹록지 않은 이유가, 우리가 하는 일들이 많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왜일까? 노력을 해도 무언가를 얻기 힘들고, 얻고 나서도 내가 진정으로 만족하지 않은 현실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즐거워할 인생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흐음. Dynamite의 밝은 무대와는 의도치 않게 무거운 질문으로 흘러가 버렸다. 왜일까? 계속 궁금하기만 하고 답이 선뜻 떠오르지가 않는다.


방탄이 보여주는 무대는 언제나 늘 기대 밖에 위치한다.

기대 이상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허걱 하고 방심하고 있는 빈틈을 찔러서 이기도 하다. life goes on에서는 빡 센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힘을 뺀 방탄에게 허를 찔렸었다. 방탄 정도면 더 화려할 수도 있었다.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만큼 힘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로를 주는 방식으로 방탄은 화려한 의상 대신에 파자마를 선택했고, 현란한 카메라 앵글 대신에 가까이서 찍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줬다.

연말에 특별한 시상식에 선보이는 무대이니 가수가 평소 무대보다 신경을 많이 쓰는 건 당연하겠다. 하지만, 방탄이 보여주는 무대는 늘 특별하다. 무대의 규모, 이 무대만을 위해서 선보이는 짜임새 있는 안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무대 세트가 주는 아름다움도 특별하다.


하지만, 내게 가장 특별한 것은 방탄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만족해하는데, 그들은 늘 그렇게까지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방탄에 거는 예상치보다 방탄이 자신들에게 거는 목표치가 늘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사람들이 '방탄 무대는 이 정도일 거야'라는 지점을 넘어서서 늘 의외이고 늘 그 이상인 무대를 보여준다는 것이 말이다. 방탄이 월드 클래스인 것은 이제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방탄은 늘 방탄을 넘어서는 것 같다. 이미 최고인 자기 자신을 또 능가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작업일지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아마 그들은 지금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나 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지 않나 보다. 늘 갈증이 나고 더하고 싶은 무언가가 늘 있나 보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그것도 불가능하긴 하지만) 물리적으로 제일 크다고 생각하는 우주도 그 크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자신을 정해진 한계 안에 가두지 않는 순간, 우주도 방탄도 자신의 영역이 계속 늘어나나보다.

늘 팽창하고 발전하고 있는 방탄을 응원한다. 나도 우주의 한 부분이니 나도 팽창해 볼 테다. 이미 어느 면에서는 매일 팽창하고 있기는 하다. 쩝.


방탄 노래를 번역 없이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 아미들은 한국말로 된 가사를 번역해서 듣고 나서는 그 뜻을 이해하고 비로소 감동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말로 노래를 들었을 때의 그 온전한 느낌까지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애써 배우지 않아도 한국어 하나는 능통하니, 방탄이 쓴 가사를 외국어라는 필터를 통과하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고 노래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우리 귀에 그냥 들린다고 해서 무겁지 않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너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방탄의 가사도 외국어처럼 하나하나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방탄 무대는 당연하지 않다. 어디 한번 화려하게 내 노래, 내 춤을 뽐내보겠어. 한다면 내가 그렇게 전율하지 않았을 거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어떻게 노래와 춤과 무대로 내 진심을 화면 밖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다. 화면 안에서 그들의 진심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음을 감사해하고, 무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그들의 마음. 그들을 사랑하는 아미들의 마음이 너무 벅차고 당연하지 않다고 소중해하는 마음.


그래서, 방탄은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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