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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04. 2020

금요일, 업무 말고 주말을 계획하다

이번 회사를 다니기로 하면서, 나를 잘 돌보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이전 회사에서 탈진한 채 나와서 그냥 쉬려 했다가 갑자기 결정되어 나간 회사이다.  친구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 벌써 일을 해도 될런지?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 다짐한 것도 '일을 열심히 해 보겠다' 보다는 '나를 어떻게 잘 돌보고 지치지 않게 하는가' 다.


오늘은 금요일. 백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일주일을 토일토일토토일로 지내다가, 목요일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주기대로 생활한 지 이제 2주 차이다. 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 Things to do list를 세우고, 한 것은 지워가면서 못한 일을 체크한다.  제일 먼저 할 일로, 오늘 오후 6 이후부터 주말에 뭘 할지를 계획하려고 한다.


아픈 어깨를 치료할 거다.

한 번 치료받고는 그냥 두고 있는 오른쪽 어깨가 계속 나에게 비명을 지른다. 코트에 팔을 집어넣으려고 할 때마다, 자동차를 주차하려고 오른쪽 팔을 조수석에 올릴 때마다 원성이 자자하다.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나의 미리부터 걱정하는 병 때문에 발걸음을 주저했다. 갔다가 의사가 '이건 한 두 번 치료해서는 안돼요. 이런 거 저런 거를 계속하셔야 됩니다' 이러면 어쩌지? 그럼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되나? 상상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핑계를 대면서 계속 안 갔던 것 같다. 예상되는 기분 좋지 않은 시나리오가 나올까 봐 아예 그런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 회피인 거다. 그 회피 때문에 제일 피해를 많이 보는 건 죄 없는 내 오른쪽 어깨이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고, 막상 닥치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미리 걱정하고 미리 피하는 내 성격 때문에 '닥쳐보자'이 마음이 항상 부족하다.

나를 잘 돌보겠다는 결심이 벌써 무너지고 있다. 어깨 하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는 인간 전체를 돌보겠나.

병원을 가서, 의사 말을 잘 들어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는 노력을 들이겠다. 그게 내 몸에 당연히 써야 할 노력이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야 조금만 기다려라. 안 아프게 해 줄게. 그동안 미안했다. 사과를 해 본다.



대청소(남의 집 그냥 청소 수준)를 할 거다.

정리를 한 동안 잘 하다가 이제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정리를 하면서 물건을 많이 버려서, 어질러져도 예전만큼의 카오스는 아니다. 어질러질 물건 개수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든 물건이 다 밖으로 기어 나오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건에는 발이 달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지 말입니다.

지금 내 책상이 그렇다. 읽고 있는 책, 읽어야지 하고 꺼내놓은 책, 손톱깎이, 필기도구로 가득한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치려고 잡동사니들을 그냥 한 구석으로 밀어놓고 있다.

막상 정리를 하면 몇 십분 걸리지도 않는 일을 계속 미루고 있다. 눈으로만 정리를 계속 한다. '이걸 저기다 놓고, 이걸 집어넣고.' 계획은 다 있는데 책상은 하나도 깨끗해지지 않고 쭉 어질러져 있다. 오늘 6시 이후에 처음으로 할 일을 청소로 잡았다.


청소를 하면 내 마음도 같이 정리가 되는 것을 느낀다.

닦아내면 그만인 사소한 먼지 같은 걱정도 같이 닦아내고, 환기를 하면 사라질 꿉꿉한 냄새 같은 자잘한 고민들도 내 보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제 자리로 보내면서, 내 마음속에서 가닥을 잡지 못하는 몇가지 방황들도 제 자리를 잡아주려고 한다.

그렇게 내가 발로 다니는 공간과, 내 마음이 돌아다니는 마음의 공간을 같이 정리해보겠다. 그게 내가 금요일 일주일 업무를 마치면서 또 다른 내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루틴이 되었으면 한다.


걸을 거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걸어보려고 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해가 너무 일찍 진다고 없던 핑계도 만들어 내면서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회사 출근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그나마 좀 걸었을 텐데, 이번 주는 공장을 다녀오느라 운전만 오래 했다.

마스크를 쓰고 패딩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겠다(여기까지가 얼마나 비장한지 모르겠다). 이제 겨울을 맞아 나무는 얼마나 앙상해졌는지, 공기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끔 사람 없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그 공기 냄새를 맡아보려고 한다.

빨리 걷지 않고 그저 어슬렁 거려볼까 한다. 어디까지 가야하고 어느 시간을 채우겠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 발을 내딛고 무릎을 구부리고 다른 쪽 발을 앞으로 내딛기만 반복하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두려움과 걱정, 하지 못하고 미루고만 있었던 일들이 나를 째려보는 따가운 시선, 읽지 못하고 던져둔 책들의 무게를 다 내려놓고 그저 걷기만 해 볼까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번 마음이 비워지겠지. 하지만 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걱정들로 다시 채워질거다. 그래도 걱정들 중에 꾸물거리다가 미처 내 마음 안으로 못 들어오는 나 닮은 게으른 걱정도 있을 수 있겠다.  '네가 걱정거리였어? 아니야, 너는 걱정할 만하지 않아' 기준미달로 탈락되는 것도 있겠다.

헨젤과 그레텔이 하나씩 떨어뜨리고 걸었던 조약돌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발걸음에 하나씩 비워주고 돌아오겠다.


이제 일을 해야겠다. 내가 세운 나를 위한 계획들을 훌륭히 완수하기 위해 이번 주 마지막 working day를 잘 지내보리라. 오늘은 왠지 일이 더 잘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파이어' 다 죽었어.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 첫날 지각할 뻔하다. 좋은 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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