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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3. 2020

출근 첫날 지각할 뻔하다. 좋은 징조이다.

9시 2분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1시간 반을 여유를 두고 나왔는데도, 월요일 아침이라는 변수를 미처 계산을 못해서 버스 안에서 계속 초조하게 마음만 달리고 있었다. 출근 첫날 지각이라니, 내 사전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나는 항상 어떤 장소를 가건 20-30분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인데, 정작 중요한 날 이게 무슨 실수인지 아찔했다. 두 달 동안 쉬면서 아침 출근에 대한 시간적인 감각이 떨어졌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괜한 딴짓을 하느라고 시간을 몇십 분 날린 것도 이유일 것 같다. 밤새 난리를 쳐 놓은 강아지 응가부터 해서 마루를 괜히 한바탕 정리를 하고 나섰으니 1분이 아쉬운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에 판단 착오였다.


프로이트는 우연한 실수는 없다고 했다.

책상 위에 잉크를 엎는 실수도, 중요한 부분만 용케 피해서 엎은 건 무의식이 일부러 저지른 실수라고 했다. 오늘 '거의'지각은 너무 일찍 사무실에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 무의식이 꾸물거리게 만든 거지 우연은 아니란 뜻이다.  아마 어제 '덜 일하겠다'라고 다짐한 마음이 무의식을 움직였나 보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마음먹은 바로 다음 날부터 실천하는 사람이었는지, 내 무의식이 이렇게 일을 잘했는지 의외다.


그래서,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거의 늦을 뻔 한 첫날이.

이제 정말 일할만큼만 일하면 되겠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의 다짐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각 2분 전에 세이프 한 사람 치고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하루를 보냈다.


회사에 목숨 걸지 말자.

목숨은 회사에 걸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내 존재 이유, 사랑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는 정의, 누구에게는 공평, 하나밖에 없는 목숨처럼 귀중하게 다뤄야 할 것들은 그 외에도 많다. 회사를 다닐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세 번의 퇴사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업적이나 직함이 곧 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내가 한 때 몸담았던 부분일 뿐, 결코 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물론 회사에 있으면 그 사람이 이룬 퍼포먼스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긴 하지만, 어디 그 이름표가 평생 갈 수 있을까?

추모공원에 서 있는 고인들을 기억하는 문구를 보면, '좋은 엄마', '다정했던 아빠'라고는 적혀있어도 '몇년도 영업1위'이런 문구는 보지 못했다. 내가 죽을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하는지가 진정한 내게 붇는 이름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어도 한 번은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회사원이 아닌 그냥 나로서 진정하게 살아가야 한다. 명함 없이 직책 없이 회사 이메일 없이 살 때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때의 내 모습이 마음에 려면 나 자신으로 열심히 사는 연습을 해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회사에만 몰빵 하지 않고, 그렇다고 밥줄로써만 취급하지도 않고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그 균형을 나는 9시 2분 전이라는 절묘한 시간이 상징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부디 이 균형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명함이 없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껍데기 없이 나로서만 온전할 때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기를.

9시 2분 전 오늘 사무실을 들어설 때 나의 모습이자 나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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