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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2. 2020

백수 마지막 일요일, 느리고 나른하게

내일부터 출근이니 오늘 백수로서는 마지막 주말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내일 아침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야 하고, 더 이상은 낮잠도 안되고 점심시간에 다른 직장인들처럼 빌딩에서 빠져나가 그렇고 그런 메뉴로 점심을 먹고 들어오게 될 것 같다.

아직은 덤덤하다. 아마 본격적으로 일이 몰아치지 않아서 오늘은 아무 생각이 없나 보다.

지난 두 달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가 다 비슷한 날들이었는데, 이제는 나도 목요일 저녁부터 행복해지고, 월요일에는 우울하고 그러겠지.


'느리고 나른한'이란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둘 다 같은 자음 'ㄴㄹ'을 사용하고 분위기가 비슷해서 어원이 같나? 혼자 생각해 보았다. 나른하면서 빠를 수는 없으니 '느리고 나른한'이란 단어가 서로 붙어 있으면서 어울린다.


오늘은 '느리고 나른한'일요일이다. 6시 정도에 일찍 잠이 깨서 완전히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커피하고 빵을 먹었는데, 이내 또 잠이 들어서는 10시에 일어났다. 베이컨 계란 볶음밥 하고 김장 때 담가놓은 약간 덜 익은 깍두기 하고 뭇국 해서 1시쯤 점심을 먹었다. 낮잠을 2-3시간 정도 자고는 저녁 준비. 오늘 저녁 메뉴는 부추 겉절이, 무생채, 콩나물 있던 거에 계란 프라이만 새로 해서 고추장, 참기름 넣고 쓱쓱 비빈 양푼 비빔밥과 된장찌개이다. 딸 과외 끝나면 저녁 같이 먹고 느지막이 기숙사로 출발해서 다시 집에 돌아오면 10시 정도 될 것 같다. 잠이 다시 쉽게 올진 모르겠지만, 아마 책 좀 읽다가 자겠지.

오늘 하루가 밥 세 번 먹은 일 외에는 딱히 한 없다. 하긴 하루 세끼만 해도 큰 일이니 완전 놀고먹은 건 아니다. 중간중간 빈둥거리며 누워서 방탄소년단 신곡 듣고, 별 관심 없는 뉴스 검색하고, 그러고 시간을 보냈다.


다음 주말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과는 다른 주말 모습이겠지만, 다음날 월요일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이 있는지 없는지가 가장 큰 차이일 것 같다. 오늘을 그래서 아직 평온할 수 있다. 내일 해야 할 일을 모르는 마지막 일요일이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다. 늘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내 뜻대로 일이 진행이 되지 않는 게 다반사니까. 거기다가 이슈라도 터지면 하루 종일 마음이 갑갑한 채로 일을 하게 된다.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걸 이미 충분히 겪은 나로서는, 예상이 되니 더욱 새로 겪을 일이 무섭기도 하다.

지난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서 모든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스트레스 상황이지만 어떻게 덜 지치고 현명하게 일할 수 있을까?'생각을 해본다.


출근 하루 전 대책을 세워본다.

덜 일하겠다.

이게 가장 크고 중요한 결심이지 않을까 싶다. 잘하고 싶은 욕심, 빨리 끝내려는 마음을 조절해야겠다. 일하는 진도를 합리적으로 세우고, 더 하고 싶어도 그런 나를 스스로 말리면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면 안 되겠다 하는 다짐이다.


일이 끝나면 온전하게 쉬는 시간도 가져야겠다.

일이 계속 많으니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집에만 왔다가 도로 출근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던 게, 지난 번아웃의 원인이기도 하다. 회사가 바쁘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했지만, 업무와 일상의 ON/OFF 스위치를 분명하게 켜고 꺼야겠다. 이럴 때는 정말로 몸에 모드를 바꿔주는 스위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녁에 산책을 잠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이 일상으로 넘어오지 않게, 차단시키는 무언가 장치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는 운동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알면서도 내가 안 한다는 게 함정이다.  '운동을 해야지'하는 너무나도 익숙한 다짐을 또 한 번 해본다. 이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강한 실천이 필요하다. 내 단점이다. 다짐만 천 번 하고 실천을 제대로 못하는 것. 작심삼일을 삼일마다 하면 되겠지. 이상한 생각도 해보면서.


그림을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지난 직장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있나?'자문해봤는데 딱히 주말에 늘어져 있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었다. 그렇게 충전되지 않은 채로 일을 계속했던 패인을 고려해보면서, 이번에는 좀 달라져보리라 생각한다. 뭐든지 일 말고 정신을 쏟을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요즘에 한다. 어찌 보면 취미를 가져라, 운동해라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전혀 새삼스럽지가 않은데. 이 역시 내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아무리 모든 사람이 말해도 내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내 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참 사람이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책은 대책이고, 내일은 전혀 다른 하루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다. 그 흥분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 직장과 집간의 균형을 잘 맞춰보리라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 균형이 중요해지고, 내가 남은 생을 잘 살아낼 수 있는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

'일 잘하기'보다 '균형 잘 맞추기'를 해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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