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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14. 2020

Z.flat을 응원하며

일요일 저녁에 두통을 핑계 삼아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설거지 거리는 쌓아둔 채였고, 그나마 오늘은 책상 정리를 했고 읽다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찾아보았다는 자부심을 품고 몇 시간 남지 않은 주말을 노닥거리고 있었다.

복면가왕 프로그램에 Z.flat이라는 신인가수가 나온 동영상을 보면서, 그가 고 최진실 씨의 아들 환희 군이라는 걸 알았다. 마치 결혼식 때 만나고는 연락이 끊겼다가 이십 년 만에 친구의 아들을 본 느낌이었다. '엄마 닮았구나. 아니, 외삼촌을 더 많이 닮았나' 일면식도 없는 환희 군이 반가워서, 평소에는 불가능하다는 뒹굴거리다가 일어나기를 시전하면서, 세상 무거운 중력을 극복하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2008년 최진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검색을 해 보니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이 12년 전 일이다. 내 기억에는 무슨 이유인지 5월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10월 어느 날이었다.  그 날 뉴스를 접하고는 기분이 계속 가라앉아 있는 채로 하루를 보냈었다. 최진실 씨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나이도, 성별도 같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12년 전이면 짧은 세월도 아닌데 그 날 하루 종일 내가 느꼈던 무거운 기분과, 저녁 집으로 퇴근하던 길의 한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차를 몰고 퇴근을 하고 있었고 남산 3호 터널을 지나서 반포대교를 타기 전 신호등 앞이었던 것 같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라디오에 이금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던 것 같다. 무슨 말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첫 멘트에 나는 하루 종일 억누르고 있던 내 기분이 터져 나오면서 차 안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그녀를 평소에 열렬히 좋아하던 빅팬은 아니어서, 내가 터뜨린 오열은 나에게도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나이에 같은 성별의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로서, 내일이 운동회날이라는데, 남은 아이들은 어쩔 거며, 얼마나 힘들었길래 그런 길을 갔는지 먹먹하게 들었던 느낌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생생한 채로 남아있다.


친구 아들이 잘 커주어 흐뭇하면서도 짠한 마음 그런 거였다.

엄마가 되어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내 아이가 커 가는 속도대로 아이 나이대로, 다른 아이들도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교복 입은 아이들만 봐도 눈이 가고, 둘째 수능이 1년 남은 지금은 지난 수능날 내가 다 긴장이 되어서 혼났다.

다른 아이들을 봐도 남의 집 일 같지 않고 자꾸 신경이 쓰인다.  둘째 학교에 가면 운동장에 늘 운동화나 실내화가 한 짝씩 떨어져 있는 걸 보는데, '뉘 집 아들이(왜 아들이라고 단정하는지는 모르겠다) 또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나. 저 아이는 신발 한 짝만 신고 도대체 어디를 갔나?' 그런 생각부터 먼저 든다.

환희 군을 보니 그런 마음이었다. 게다가 우리 아들도 음악공부를 하고 있어서 아마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이제 막 데뷔를 했으니, 가는 곳마다 '엄마 많이 닮았네. 외삼촌 많이 닮았네'소리를 듣겠다. 온 국민이 기억하는 최진실 씨의 아들이자 최진영 씨의 조카인데 어련하겠나. 어린 나이에 부담이 되겠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겠다. 또한 환희 군을 보는 시선은 어떻겠는지, 내 오지랖이 또 춤을 춘다.

외모는 엄마와 많이 닮아 저절로 엄마를 떠올리게 되지만, 환희 군 인생자체에서는 아들에 엄마를 겹쳐서 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오지랖을 펼친 김에 해 본다.


내 아들도 내 삶의 연장이 아니듯이, 환희 군의 인생도 자신만의 것이다.

어린 나이에 큰 슬픔을 많이 겪고, 일을 겪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니 평범한 시절을 보낸 소년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기쁘고 소소한 일상이 없었을까? 내 인생에도 파도가 치는 때가 있고 고요한 때도 찾아오듯이, 다른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가볍게 넘겨짚지는 말자.

이제 막 시작하는 그를 그저 보아주는 것,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그 하나만의 인생으로 보아주는 것, 다른 사람이 그의 엄마라고 할지라도.


그저 반가웠다. 환희 군에게서 내가 어느 날 죽음을 많이 슬퍼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아서.

나는 환희 군이 하는 랩이라는 음악을 잘 모른다. '그 많은 가사를 어찌 다 외웠나' '숨은 언제 쉬나', '어떻게 박자에 맞게 다 읇조리나'하는 정도의 감상만 있을 뿐 그의 음악을 평가할 지식은 내게 전혀 없다. '음악을 하는데 19살에 앨범을 냈고 방송에도 나오니 웬만히는 하나 보다' 정도이다.

다만,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최진실 씨의 아들인 그를 보면서 내 인생 스토리를 투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 나도 힘들었던 한 때가 생각나고 그녀의 찬란했던 젊음을 회상하며 애잔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드나 보다.  너무 가난했어서 지금도 안 먹는 음식이 수제비라고 했던 그녀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기억나고, 그렇게 예뻤는데 그렇게 반짝거렸는데 고통 속으로 떨어진 것도 한순간이었구나, 참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그녀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녀의 아들이 잘 커서, 그것도 아주 예쁘게 잘 커서 이렇게 화면으로나마 눈앞에서 보니 정말로 반가웠다. 내가 이웃집 사람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잘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이렇게 복잡한데, 환희 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저마다의 스토리를 담고 있을까.

그 복잡한 감정까지 환희 군이 감당하고 이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 아, 엄마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구나. 그 엄마의 아들인 나를 그래서 또 봐주는구나.'정도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또 또 오지랖이 태평양을 넘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 놈의 오지랖을 줄여야지 생각을 계속하는데도, 무슨 일이든 다 남일 같지 않고, 뭐라도 한 소리를 해야 할 것 같으니 이것도 노화에 의한 질병이 아닌가 싶다. 약도 없는 불치병.


'반가웠다고,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벌떡 일어날 만큼 반가웠다고' 옆에 있다면 말 한마디 건네보고 등 한번 살짝 토닥해주고 싶다. 아, 등 토닥은 또 오바였던 것 같다. 말 한마디까지만 건네는 것으로.

어쨌든 환희 군의 새로운 길을 응원하면서. z.flat이라는 내게는 생소한 그의 이름으로도 응원을 보낸다.


오늘 글에는 '그저'라는 부사가 자주 등장한다. 찾아보니, '별로 신기할 것 없이'라는 뜻이다.

그저 반가웠다.

언제나 아름다운 그녀. 살았으면 나보다 두 살 언니인데.  나는 그녀보다 나이가 들었고 그녀는 계속 젊은 채로 웃고 있다. (사진출처: 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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