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Dec 16. 2020

갱년기의 시작. 끝이 더 무섭다

몇 주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몸살인 줄 알았다.

그냥도 추웠지만, 희한한 게 조금만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을 보면 등부터 소름이 오싹 끼치면서 그게 오한으로 이어졌다. 마치 마음의 파동이 증폭기를 거쳐서 몸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계속 추운 게 가시지를 않아서 옷을 껴입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저절로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자다 보면 또 더워져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다 말고 옷을 벗어버리느라 잠을 깼다.


병원을 찾아가서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증상과 내 나이를 고려하면 빼박 갱년기인 것 같다. 뭐 병원을 간다 한들, 내가 지금 예상하는 진단과 처치에서 많이 다를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에서 나 혼자 짐작하고 이런저런 궁리만 해 볼 뿐이다.


내가 아무래도 갱년기인 것 같다고, 추웠다 더웠다 한다고 했더니, 이전 직장 동료가 '그건 일도 아니라며, 자다가 집에 불이 났나 싶어 일어나야 진짜로 겪는 거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그냥 감기 초반에 춥다가 식은땀 나는 그 정도인데, 이게 애교 수준인 거면 끝판왕은 어디쯤인지 오한보다 불안이 나를 더 압도한다.


어디가 조금만 이상하면 다 갱년기 탓을 할 수 있어 편하긴 하다.

원래도 자주 겪었던 두통이 더 흔하다. 갱년기 때문이다.

어제는 오십견이 있는 어깨가 갑자기 경련이 났는지 자다가 너무 아파서 '악'소리를 냈다. 임신했을 때 다리에 쥐가 나서 새벽에 소리를 지르고 한동안 어쩔 줄 몰랐던 경험과 비슷했다. 이것도 갱년기이지.

씁쓸하지만 핑계를 댈 대상이 생겨서 반갑다고 해야 할까? 이 모든 것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온 것이었으면 더 불안하지 않았겠나. 그래도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겪는지, 그 정체를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덮어 씌우는 김에 내 살의 주범도 갱년기인 걸로 하기로 했다. 나는 살을 정말 빼려 했으나, 갱년기인 관계로 살 빼기가 좀 어려운 걸로 그 죄를 묻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식욕증진이나 식욕폭발이 갱년기 증상인 경우는 없어서, 어떻게 모함을 해서 죄를 뒤집어 씌워볼까 궁리 중이다. 뭐 사람마다 증상이 다 다르다고 했으니, 내 경우는 갱년기 때문인걸로 한다. 내가 그렇다는데 우기면 된다.


아직은 참을만해서 그런지, 나는 지금보다 이후가 더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겪었던 몸의 큰 변화들은, 성장이나 임신 등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초경을 하고 매달 생리를 하면서 생리통과 씨름하고 힘들긴 했지만, 정상적인 몸의 변화였다. 임신과 출산도 질병으로 겪는 고통은 아니었고 두 아이를 내 몸 안에서 길러서 낳는 신비로운 과정이었다.

이제 아마도 호르몬의 변화로는 마지막 단계로 접어드는 갱년기를 겪으면서 어떠한 내 모습과 마주치게 될는지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최소한 몸이 더 여기저기 아파질 거다. 마음으로 겪는 변화가 참 힘들다던데 그 모양은 어떨지 아직 정체를 다 드러내지 않은 상대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갱년기도 반갑지는 않지만 이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나이를 먹는데 이전과 똑같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다만 아직 내가 잘 모를 뿐이다.


이전까지 충분히 무기력했었는데, 이제 겨우 빠져나온 지금 갱년기 때문에 또 겪는다고 생각하면 나는 억울하다.

아들과 우리 집에 몰아닥친 폭풍우로 지난 4년 동안 많이 힘들고 휘청거리다가 좋아진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또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터널을 들어가야 한다면 비참하지 않을까.

다행히 아직 정서상의 변화는 크게 없다. 이전처럼 게으르고 이전만큼 불안한데, 오히려 문제가 무엇인지 정체를 뒤져보려고 하면서부터는 불안한 것도 많이 줄었다. 게으른 게 갱년기 증상이라면 난 평생이 갱년기였나 보다.


생에서 무기력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나는 이번만큼은 면제해 줬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인 줄을 충분히 알기에 다시 그 늪으로 빠지는 것은 절대 사절하고 싶다. 내가 거절한다고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기력이 반가울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한 가지 미리 겪어본 장점은, 행여나 또 겪게 된다고 해도 '내가 어떤 마음일 거고', '어떻게 하면 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조금은 안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나. 상대방의 정체를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섣부른 불안은 줄어든다.


'까짓껏 닥쳐보자'

요즘의 내 생활신조이다. 가훈으로 전해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든다. 어디 멋있는 글씨체로 액자라도 해서 걸어놓고 싶지만 그다지 격조 있어 보이지는 않아서 참고 있다. 근사하게 한자로 '화목', '정직' 이렇게 써 놓아야 뽀대가 나는데 '까짓껏 닥쳐보자'는 너무 날 것의 냄새가 나서. 하지만, 확실한 내 취향이다. 직접적이고, 살아있어 내게 직접 말하는 것 같아 좋다. 기운이 쳐질 때마다, 일을 미루고 싶을 때마다 주문처럼 읊조린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까짓껏 안돼도 그만이지. 세상에 모든 일이 잘 되기만 할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갱년기가 별거인가.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거다. 오히려 다른 사람 다 겪는 걸 나만 안 겪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나. 남자들이 힘들지만 군대 다녀와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오프 사이드도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주제이다), 엄마들이 서로 자신의 분만과 수유에 대한 경험으로 우정을 쌓는 것처럼 말이다.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나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므로 동지들과 머리를 맞대면 나아지지 않을까. 이참에 또 갱년기 연대로 뭉쳐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몸이 덥다.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인데, 아무리 방안에 있어도 더울 날씨는 아닌데 말이다.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지켜본다. 무엇이든지 응시해 보는 것이 제일 첫 단계이자 가장 좋은 해결책임을 배웠다. 어차피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 같이 가야 할 존재이다.

익숙해 보는 걸로, 정체를 좀 더 알아보는 걸로, 닥쳐보는 걸로.

갱년기가 끝나 있을 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몇 년 늙어있겠지. 그 때에 '그래도 그걸 겪을 때가 좀 더 젊어서 좋았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제일 젊은 오늘. 갱년기와 상관없이 내 일을 하고, 오늘은 기필코 가스레인지를 청소하겠다. 앞뒤가 안 맞긴 하지만 그게 내가 갱년기를 내 눈앞에서 무시해 버리는 일인 것 같다. 왠지 그렇다. 그놈의 가스레인지를 내 기어이.


매거진의 이전글 Z.flat을 응원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