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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17. 2020

좀 이상한 기브 앤 테이크

운전면허증을 94년도에 땄으니, 운전면허증 나이가 올해 26세이다.

운전을 본격적으로 한 때는 97년부터이니, 운전경력은 23년이다. 병원에서 나와 들어간 회사에서 운전을 여한 없이 했다. 첫차로 마티즈를 사서(아직도 눈에 선하다 파란색 마티즈) 국도도 다니고 고속도로도 다니고 좁은 골목길도 다니고 종횡무진했다. 마티즈로 시속 160km까지 달려봤다. 차가 붕 뜨는 줄 알았다.


처음 운전할 때만 해도 내비게이션이 없던 때라, 차에 전국 지도 하나, 서울시 번지수까지 나와있는 지도 하나를 두고는 낯선 길을 찾아가기 전에 지도 공부를 엄청 열심히 다. 올림픽대로를 타다가 무슨 다리를 건너서 무슨 사거리에서 좌회전하고 농협이 나오면 우회전, 이렇게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의 경로를 줄줄이 미리 써놓고 찾아다녔다.

길을 잘 아는 회사사람에게 회사에서 그 곳까지 가는 길을 속속들이 물어보고는, '올 때는요?' 이렇게 물어보았다가 다소 황당해 하는 듯한 답변을 들은 적도 있다. '간 대로 오면 돼' '아....(깊은 탄식과 큰 깨달음, 간 대로 오면 되는거구나)'

어느 초보운전 회사 동료는 처음으로 차를 운전하고 회사를 출근하던 날, 길을 몰라서 매일 타던 버스 뒤를 졸졸 쫓아왔다고. 버스가 정류장에 서면 같이 서고 이러면서. 그런 시절이었다.


서울은 그래도 지도가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는데, 오히려 지방국도에서는 어느 만큼 가야 하는지 거리 감각이 달라지고, 이정표로 삼을 만한 큰 건물이 없어서 길 찾기가 어려웠다.  길을 알려주는 분도 정확하게 일러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천 쪽으로 쭉 오면 되요. 오다가..' 무슨 길을 타서 이천 쪽으로 오라는 설명도 없이 본인한테만 익숙한 길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을 하니, 초보인 나로서는 종잡을 길이 없었다.

그럴 때는 주유소에서 물어보기도 하고, 경찰서에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서 물어보면 최고였다. 직업정신 투철한 경찰분이 A4용지를 근엄하게 딱 꺼내서는, 사거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려가면서, '여기는 점멸 신호등입니다. 이걸 두 개를 지나시고요.'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그저 길을 알려주는 것뿐인데 아, 이래서 경찰이구나 하는 신뢰가 한방에 들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운전을 해서, 낯선 길을 찾아가는 데에 두려움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운전을 잘한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이제 운전은 생활이고 낯설지 않다는 정도. 길 위에서는 늘 변수가 있고, 차가 그 속도와 질량만큼이나 흉기로 돌변할 수 있으니 운전은 늘 익숙하면 안 되고 긴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비록 차 안에서이지만,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나게 다. 그들이 평소에 어떤 모습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운전만 하면 나타나는 또 다른 성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는 경우는 이런 거다.

내가 왼쪽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려고 깜빡이를 켰는데 뒤차가 죽어라 안 비켜주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럼, 지나고 가지 뭐. 하면서 그 차 뒤로 차선 변경을 하는데, 정작 그 차는 내가 있던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한다. 그럴 거면 서로 속도를 늦춰서 교차했으면 되었을 걸, 자기도 차선 변경을 할 거면서 자기 앞으로 가는 건 못 보겠다는 심산인 건지.


일주일 전쯤에는 90킬로 제한속도인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요즘에는 과속카메라가 열일하는 걸 몸소 경찰청에서 보내주는 범칙금 고지서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속도대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는 순간부터 뒤통수가 근질근질해서 룸미러를 보았더니 트럭 하나가 내 차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는 거다. 처음에는 조금 있으면 거리가 좀 벌어지겠지 했는데, 한참 동안을 간격을 벌이지 않는다. 이렇게 가다가 내가 급브레이크라도 밟으면 사고가 나는 거다. 뒤차가 원하는 대로 속도를 올려서 저만큼 가줄까 싶기도 했지만, 내가 잘못하는 것도 아니니 그대로 갔다. 그러더니 차선을 옮기고는 다시 내 앞으로 와서는 쌩하고 달려 나간다. 아니, 옆 차선도 비어있는데 진작에 옮겨서 자기 갈 길을 가면 될 것을, 앞 차를 위협해서 자신이 힘을 행사하는 것을 이루고 말겠다는 것인지.


나도 민폐를 끼칠 때가 있다.

어제는 작은 골목에서 보행신호 때 좌회전을 해서 큰길로 진입하는데, 내가 앞차를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꼬리물기를 해 버려서 좁은 사거리에서 민폐를 끼쳤다. 내가 반대편 1차선을 어중간하게 막아버려 차들이 비켜서 지나가야 했다. 밤이라 내가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지나가는 차들 속에서 나한테 하는 욕이 서라운드로 들리는 듯했다. 어찌나 좌불안석이던지 신호가 바뀔 때까지가 영원한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어제는 일이 많았다. 처음 간 건물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차를 회전할 공간이 매우 협소한 주차장이었다. 빈자리에 주차를 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나간 다음에 각을 꺾어서 후진해야 하는지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너무 많이 돌면 앞차와 부딪힐 것 같고, 옆 차와도 거의 아슬아슬하고. 정말 깻잎 한 장의 차이를 만들면서 차를 꺾기를 무한 반복했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그 와중에 차 한 대가 나가려고 내가 주차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있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상황인데, 여기에 기다리는 차까지. 내 느낌으로는 또 한 번의 영원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 묵묵히 기다려준 운전자분께 정말로 감사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는 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사는 것 같다.

셈이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준 사람에게 되갚아줘야 셈이 맞는 것 같은데, 살면서 생기는 일은 그렇지는 않다.

운전하다가 불쾌했던 기억을 그 사람에게 돌려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운전자의 너그러움으로 상쇄될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남의 실수에 좀 더 너그러워진다.

내가 받은 누군가의 호의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주면, 그 호의가 돌고 돌고,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방법인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지 않기, 나 혼자 대접받으려 하지 않기, 남에게 관대해지기.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좋은 환원으로 바뀌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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