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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18. 2020

검색어 너머, 검색되지 않는 사람의 마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통계를 클릭해 본다.

글이 몇 개 없을 때는 거의 당일 올린 글만 조회가 되었는데, 이제 글도 많아지고 가끔 조회수가 많은 글이 있으면 같은 매거진에 있는 다른 글도 조회수가 올라가기도 한다.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모든 글이 한 번씩 읽힌 것을 볼 때면, 고마운 누군가가 내 글을 정독해 주었구나 감사하고 더 글을 열심히 써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중에, 검색으로 찾아서 조회된 경우도 있는데 검색어 몇 마디에 나 혼자 생각에 잠기다가 웃다가 안쓰럽다가 한다.


얼마 전 기말고사 기간에는, '시험을 망친 딸에게 무슨 말', '시험을 망친 딸', '시험을 망쳐서 우는 딸'이 검색어에 있었다.

내 글이 '딸이 시험을 망쳤다. 다음 엄마의 말 중 적절한 것은?'이었으니, 검색이 이렇게 되었나 보다. 에고,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으면 검색을 다 해보았을까. 시험이 다는 아니라고 부모들은 아이를 위로하려 하지만, 입시의 압박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말은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시험 점수가 전부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교에, 학원에 그렇게 아이들이 시달리겠나.

시험을 망친 딸, 그 딸이 안쓰러운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겠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한참 사춘기 아이가 듣겠나 싶다가도 그래도 한 마디 해주자하고 건넨 말을 의외로 아이들은 크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을 할까 저 말을 할까 조바심을 내었을 엄마, 아빠 마음을 딸이 알아준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걱정하고 애타하는 마음으로 말을 주고받는다면, 시험 한 번 망친 것쯤은 딸도 충분히 극복하리라 생각해본다.


정작 우리 집 딸내미 기말고사 성적은 모른다. 죽 쑨 얼굴을 안 하는 걸로 보아 망치지는 않았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사춘기 딸과 지내면서 추리력만 증가한다. 나는 '딸 시험결과 추리하는 법'이라고 검색을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무기력'도 가끔 검색이 된다.

나는 무기력한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했던 분들이 있었다면  '나는 무기력하다'가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누군가가 '무기력'으로 핸드폰에 검색어를 입력한 마음을 너무나 알겠어서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원인을 찾고 싶었을 거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금 겪고 있는 무기력이 없어질까 알고 싶었을 거다.


어찌 보면 핸드폰이 무기력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무기력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무기력할 때는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유튜브에 '무기력'이라고 검색을 해서 찾아진 많은 동영상을 보았다. 전문가들이 해 주는 조언도 위로가 되었고, 쓰레기집 청소해 주는 동영상을 보고 우리 집 작은 곳에서 시작한 버리기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핸드폰이 없었다면 세상과 더 단절되고, 누군가 도움을 주고 싶은 글과 영상을 보지 못했을 텐데,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어도, 나와 같은 무기력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컴퓨터 너머로 내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무기력'한데, 그래도 딱 검색을 할 만큼의 기력이 있었고, 그래서 내 글에까지 도착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보답이다.


'라디오 주파수'를 검색했던 그분은, 검색이 안내해 준 글이 까칠한 딸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디오 주파수'는 두 번인가 검색이 되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잡기가 힘든 곳에 사나?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오는 주파수를 찾고 싶었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검색 의도는 여기까지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하게 가능성을 생각해 보아도, 사춘기 딸 이야기하고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내가 의도했던 바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나는 우연도 우리에게는 있다. 나는 가끔 '뜻하지 않았던 일', '예상 밖의 일'을 만나는 데에 기쁨을 느낀다. 우리가 예측한 대로만 일이 펼쳐진다면 참 재미없을 것 같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불운한 일은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만나는 일 중에는 귀엽고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것도 있다.


지난 수요일 수업에서 만났던 '자주'라는 말도 그렇다. 띄어쓰기 수업을 듣고 있는데, 그중에 조어론을 배우면서 어근과 접두사, 접미사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자주'가 분해할 수 있는 말로 보이는지? 나는 여태까지 이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이게 나누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생각도 못했다. '자주'는 '잦'+'우'(부사 형성 접미사)가 붙고 'ㅈ'받침이 '우'하고 붙어서 '자주'가 된 것이다. '너무'도 마찬가지이다. '넘다'의 '넘'+'우'가 붙어서 '너무'가 된 것이다. 우리가 하루 먹고 자고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지식이지만 나는 이런 걸 배울 때가 너무 재미있다. 지루한 내 일상에 주는 서프라이즈 같다. '도로'가 '돌다'에서 온 말이라니, 와우. 세상 놀라우면서 세상 귀엽다. 나만 그런가?


'라디오 주파수'를 검색하고 라디오 주파수처럼 맞추기 힘들고, 잘 안 잡히기도 하고,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딸 이야기라는 예기치 못했던 결과물을 만났다면, 이 우연한 만남을 즐겨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혹시 아나, 우연히 들어왔는데 그분에게도 이렇게 똑같은 딸이 있을 줄. 그랬다면 그분에게도 서프라이즈가 되었을지도.


예전에 검색을 못하던 시절에는 어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궁금한 일만 생기면 핸드폰을 열어 검색부터 한다.

처음 가는 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을 때의 후기, 얼굴만 가물거리고 이름은 죽어도 생각 안나는 배우 이름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몇 초의 검색으로 다 해결되는 세상이다.

정작 해답이 쉽게 없는 세상 사는 지혜도 검색으로 알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이것은 만만치가 않다. '인생 잘 사는 법'이라고 검색을 하면 내게 맞는 정답이 떡 나올까? '가족에게 상처 받았을 때'라고 검색을 하면, 가장 가깝고 소중해야 할 가족에게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검색 결과물이 뜰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나 답답하고 해답을 찾고 싶었으면 검색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누군가에게 마음이 짠해온다. '검색'이란 내가 갖고 있는 질문에 누군가는 해답을 갖고 있겠지. 그걸 찾고자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일 거다. 하지만 포털사이트가 그 해답을 갖고 있지 않으리라는 건, 검색하는 사람도 알 거다. 인생의 복잡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글 너머의 진심이 전해진다는 것을 믿는다.

아니, 글뿐만이 아닌 다른 매체로도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도움을 받았고, 다른 이들도 내 글을 읽고 그랬으면 하는 거다.

글이 갖는 힘, 작은 위로가 누구에겐가 갖는 힘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마을 모두가 아이에게 가족처럼 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기울이는 사랑 만큼은 아니지만,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건네는 작은 관심이었을 거다. 횡단보도에서 너무 앞에 가 있는 아이에게,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 있으라고 한 마디 하는 것. 아들 친구가 힘들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 걱정해 주는 것.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건네는 합은 마을 전체가 될 것이고 그 힘이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기에 나누는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었고, 그걸 우연이라도 접한 사람이 그 힘이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그게 작은 거였어도 그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그런 우연도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그런 마음으로 작은 글이 크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글을 써본다.


오늘 검색어가 하나 걸렸다. '20살 아들' 왜 웃기지? 전혀 코믹한 요소가 없는데 말이다. 20살이 웃길까, 아들이 웃길까. 아마 어느 집 20살 아들이(우리 아들과 동갑) 말썽을 피우는가 보다 싶어서 괜히 웃어보았다. 엄청 크게 폭풍우를 겪고 나서 지금은 혼자 잘 살고 있는 아들 이야기인데, 검색한 그분의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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