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Dec 24. 2020

성탄절 이브 말고 그냥 12월 24일

연말 분위기란 1도 없는 12월 어느 날이다.

그런데, 오늘 날짜가 12월 24일인 거다.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내일은 12월 25일이겠지. 그냥 그런 날이다.

아마도 아무런 분위기를 못 느끼는 이유가 캐롤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인 것도 같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때에 음악이 인기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는 길거리에서 그 음악이 나오느냐였다.  이맘때쯤 거리를 걸었다면 캐롤을 계속해서 듣게 되었을 거다. 요즘은 커피숍이나 음식점에 들어가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길거리는 커녕 집 밖으로 신발을 신고 나간 적도 없는 요즘은 연말 느낌이 나는 음악을 들을 기회도 없다.

음악이야 내가 찾아서 들어도 되지만, 연말에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밀린 이야기도 해야 한 해를 마감하는 것 같은데, 올해는 시국이 이러니 흥이 나기는커녕 기운이 빠지는 그냥 12월 24일이다.


그나마 평상시에는 하던 대로 지내다가, 연말이 되니 기분이라도 특별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느끼는 허탈감 같다. 생각해 보면, 작년 연말이라고 해서 올해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는 심리인가 보다.


딸이 '성탄절에 무슨 음식 해 줄 거야?'라고 묻는다.

우리나라 명절도 아니고, 성탄절에 무슨 음식을 해 먹는지 관심도 없는데 갑자기 물어보길래, 치킨이나 시켜줄까 했는데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딸이 요구하는 음식은 마라탕과 매운 떡볶이. 성탄절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이다. 마라탕과 성탄절이라니. 이런 식으로 라면, 성탄절에 마라탕, 석가탄신일에는 떡볶이 뭐 이렇게 돌려 막기 하면 되겠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연휴에 메뉴 고민이 벌써부터 된다. 하긴 나도 잡채를 하나, 미역국을 끓일까 생각했으니 성탄절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말을 앞둔 일상적인 고민이다.


그나마 저녁에라도 집 밖을 나갔더니 움츠려 들었던 마음이 좀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대면 예배를 진행하는 교회에 성탄 전야 예배 성경봉독을 하기 위해 불려 나가는 길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교인들로 가득 찼을 교회에 다섯 명 남짓 모여서 예배를 송출하고, 그래도 나는 그 덕에 못 부를 줄 알았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왔다.

예년과 다르게 썰렁한 예배를 드리면서 그 덕에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다. 성탄절이 정말로 기쁜 날인가? 온기가 부족한 교회 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가 곧 태어나는데, 작은 방 하나를 구하지 못해서 말구유에 아이가 놓이게 된다.

세상 초라한 탄생이다. 그 당시에 천대받았던 목자가 제일 먼저 그 소식을 듣는다. 요즘은 병원에서 안전하게 아이를 출산하고 엄마도 아이도 따뜻하게 돌보아지는 그 시간을, 거의 길바닥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첫 탄생을 맞이한 것이다. 예수의 시작도 끝도 보통 사람이 겪지 못할 가장 바닥의 경험이었다. 그 이유로 예수는 이 땅 위에 온 것이고, 성탄절의 본질은 오늘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집 안에 있지 못하고 길 위에 있는 사람들, 세상에서 멸시받는 사람들. 예수가 첫 시작부터 길 위에서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본질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리 성탄절이 그저 하루의 휴일이 되고, 사람들은 연말에 화려한 불빛과 파티로 그 시간을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성탄절의 본질은 그대로이다.

기쁘지만 화려할 수는 없는 날, 엄숙해지면서 마음이 슬프기도 한 날. 나만 편하게 잘 살고 있는 거에 지극히 만족해하지는 않나? 대답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부끄러우면서 당황스럽다.

연휴 동안 재정계획을 새롭게 짜 보리라 생각해본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했다. 비겁하지만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라, 내 마음의 짐을 덜어보고자 겨울에 추운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오늘이 가기 전에 뭔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그저 지나가지 않고 조금은 특별한 12월 24일이 아니었나 싶다.

내 눈에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아니, 내가 보기를 미처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 가족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에서 눈을 돌릴 수 있을까? 성탄절에 생각하는 부끄러운 질문이다.  그 부끄러움에 눈감지 않아 보겠다는 다짐도 같이.


매거진의 이전글 검색어 너머, 검색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