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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그 무엇의 재현이 아니다.

"이미지는 그 무엇의 재현이 아니다. 언어 없이 이미지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우리가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보는 장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지들은 문자에 앞서 전달했던 혹은 압축했던 신화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들. 제29장.


키냐르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마치 하나처럼 다룹니다. 그림과 이야기, 그 둘 사이의 연결은 근대인식론이 놓친 것입니다. 잃어버린 미학적 고리입니다. 근대인은 이 사슬을 끊었습니다. 그들은 꿈꾸기의 고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의미하는 꿈 꾸기를 상실했습니다.


그림과 이야기는 공-진동하며 의미를 수태합니다. 이미지와 텍스트는 공-영역을 만들며 의미를 생성합니다. 실체 substantia와 실존 existentia은 그들의 접힘에서 의미를 창작합니다. 그곳에는 본질 essentia 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키냐르가 말한 "이미지는 그 무엇의 재현이 아니다."라는 말 뜻입니다.


본질은 은밀한 욕망 cupiditas으로 기름 부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형상 forma 은 숨겨진 곳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 은신처의 입구에서 생각하는 존재 res cogitans는 망설입니다. 여전히 투명한 재현을 구상하기 때문입니다. 그 입구에서 포획된 존재 res capta는 그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유희하는 존재 homo ludens는 그렇게 예술품에 사로잡힙니다.


인간은 발기한 사냥감이고 예술품은 젖은 포식자입니다

Homo praeda erecta est, et opus artis praedator madidus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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