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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난간 위에서

추락하지도 상승하지도 못한다. 고로 창작한다.

(위태의 난간 위에서는 추락만을 만날 수 있었다)


바벨의 난간 위에 그가 있었다. 버티고 있었다.

한 발로 한 손으로.

좁은 난간, 그건 그의 뒤꿈치만을 바쳐줄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거의 항상 빈 공간에 있었다.


(위태의 난간 위에서는 구원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추락하지 않았다.

높게 뻗은 한 손은 충만의 살, 그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위태로운 그 끝자락은 그의 손 끝으로만 겨우 잡힐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한 발로 한 손으로 공허에서 버티고 있었다.


(정수리에 무한이 스친다.)


그는 마지막 유희, 그 광대 모자를 벗는다.

정수리에 무한의 신비가 스친다.

신비의 투명함이 그의 페니스 끝을 감싼다.

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발끝에는 심연이 스친다.)


그는 마지막 광대의 신발을 벗어던진다.

심연의 웅성거림이 그의 발끝에 스친다.

웅성거림의 어둠이 그의 불알 밑을 핥는다.

그는 흥분한다. 고로 존재한다. Excitor, ergo sum.


(그는 아직 추락하지도 상승하지도 못한다. 고로 창작한다.)

(Nondum cadit nec ascendit ergo c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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