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ϕ 구름을 품고

by 김은채

선택에는 자기 자신이 깃들기 마련이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에 침묵하는가. 대놓고 보여지는 것들에 전념하기보다, 쉽사리 내어 주지 않는 마음에 정진하면 보다 깊이 몰입할 수 있다네. 가령 예술가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보다는 폐기된 조각들을 수집하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이지.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당최 통제할 수 없는 결정이 있네. 그것은 다름 아닌 탄생이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네. 삶이라는 시공간에 내던져진 존재는, 영문을 모른 채 목숨만을 부지하는 우리 인간이라네.




앞으로가 궁금한 아이. 나이와 지위를 불문하고, 만난 모든 이에게서 한결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네. 하물며 길을 나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불쑥 나타나 찬사를 건네는 이들이 있었다네.


사람들은 나의 태생을 물었으나,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자결(自決)이었네. 단번에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죽음을 뒤로 하고, 그럼에도 살아 있기를 선택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야. 삶은 뜻밖이었으나 어떤 운명은 짐작 가능하곤 하지. 나는 다스릴 수 있는 것들에만 흥미를 보이곤 했네.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광기 어린 실체가 필요한 것 같더군. 지키고 싶은 사람들, 관념적인 무언가, 순간순간의 재미, 일상의 소소한 기쁨. 심지어는 찰나의 쾌락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생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었다네. 이해할 수 없는 결의의 연속이었지만, 다시 삶이라는 것을 믿어 보고 싶어졌지.


선. 나는 어느 선명함에도 가닿을 수 없었네. 골라잡은 가치로 스스로를 세뇌하고, 해석을 주입시켜도, 되레 삶에 대한 반감만이 거세게 치밀었네. 그 속에서 허무만을 마주할 뿐이었거든. 스스로의 삶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하는, 영락없는 보헤미안의 행색이었어.







달은 비추거나 구원하기 위해 뜨고 지는 게 아니라, 그저 존재할 뿐이네. 만월(滿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상에서 그것을 올려다 보는 자들의 몫이지. 제 몸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것에 어떠한 이유도, 비장한 결심도 담지 않네. 다만 우주의 섭리 속에 자신을 놓아 둘 뿐이라네.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행위가 함의하는 바는 아무것도 없네. 허나 바로 그것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선택이라네. 망망대해를 외면하지 않음에도, 의미라는 닻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시도 말이야.


나는 나에게 허락된 이 막막한 자유의 끝까지 살아남을 작정이네. 명분은 살아 있음, 그것으로 충분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