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떳떳한 광대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의 사적인 이야기로 극을 올리고 싶다더군요. 아, 축하는 넣어 두셔도 좋습니다.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는 기분이었으니까요. 글쎄 말입니다. 설렘이라기에는 들뜨지 않았고, 뿌듯함이라기에는 어딘가 불편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글을 쓴다고 밝히면 언젠가 책을 낼 생각이 있냐는 질문이 따라 붙지 않습니까. 서사가 돈이 되고, 취미가 업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사람들은 타인의 텍스트를 탐닉하고,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의미를 길어 올립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교양 있는 식사법이지요.
연극은 참 기이합니다. 극을 보러 가신 적이 있으시다면 잘 아시겠지요. 극장의 모두가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허구임을 공유합니다. 무대와 객석의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완전한 몰입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엉성한 경계가 유머로 소비되곤 하지요. 진실 없는 거짓들의 집합, 이 별난 약속이 연극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상상해 보십시오. 제 삶이 그 무대 위에 놓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우는 진실로 연기하려 하겠지만, 관객은 연기가 거짓이기에 안심하고 환호할 겁니다. 그것이 그들의 책무이자 역할이니까요. 나의 고통은 조명 아래서 적당한 채도로 복제되고, 나의 환희는 극적인 음악과 함께 재생되겠지요. 저는 제 손을 떠난 제 이야기가 타인의 시선과 음성 속에서 마구 뒹굴며 굴절되고, 끝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근사하게 둔갑하는 꼴을 지켜봐야 할 겁니다.
압니다. 작가의 의도된 진심보다 방종에 가까운 해석이 창작이라는 풍경을 완성한다는 논리를요. 그것이 예술의 숙명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갈증이 난다고 해서 아무 물이나 들이켜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나는 이미 나라는 배역을 누구보다 성실히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 극의 유일한 관객은 나 자신으로 충분합니다. 익명의 박수와 찰나의 갈채보다, 영원히 읽히지 않는 비밀스러운 텍스트로 남는 편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누는 지금의 은밀한 고백 또한 하나의 연극이 아닐 리 없겠지요. 자, 이제 막을 내릴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