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絶頂)

ϕ 해방의 신호

by 김은채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이내 나와 진득히 뒹굴었다네. 시차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이와 연결되어 있던 한때와는 달리, 기어이 구에게로 향하곤 하지.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네. 그저 그럴 수 있을 때 그러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네. 외부 일정이나 달리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의식을 깨우는 것이네. 이후 호흡을 의식으로 옮기고, 영감을 작업으로 잇는다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과지만 체감상 빠르게 저물어 간다네.




마찰 없이 어우러지고, 극점 없이 이어지는 하루. 이 흐름에 입각하여 조금만 더 견디면 평안에 다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네. 나와의 규칙을 지키고 신뢰를 깨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지. 나는 곧 나의 주인이자 전부였으니까.


모든 것이 무사했던 그날 밤, 완전히 잊고 있던 감각이 한순간에 떠올랐네. 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직면할 수밖에 없었네. 주저함의 박동이자 본능적인 떨림. 나의 죽음의 무도는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네.







늘상 내 안의 사자후(獅子吼)를 감각해 왔다네. 나조차도 한계를 모르기에 섣불리 꺼내지 않았고,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한발 먼저 물러섰지. 실은 무던함이 아니라 극한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던 것이었네. 금기로 빚은 관 속에 자진하여 몸을 구겨 넣고는, 기질을 역행하듯 살아온 것이야.


허나 사자란 모름지기 군림해야 하는 법. 포효가 폭발로 번질까 두려워 스스로를 찍어 누르는 것은, 압도하는 권위가 아니라 비겁한 도망이었네. 제힘을 과시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 본 적조차 없었던 것이야. 두려움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행동을 저해하는 움직임이었네.




내가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이니, 그대는 나를 끌어내릴 수도, 띄워 올릴 수도 없네. 나는 다만 나 자신이고, 그 자체로 높이와 깊이가 된다네.


나는 더 이상 정점을 준비하지 않는다네. 경로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야. 그곳이 언젠가 도달할 목표나 이뤄낼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그래서 조급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아. 애도 역시 불필요하네. 이는 포기하거나 그만둔 것과는 다르거든. 다만 동등히 맞설 뿐. 나는 이미 정점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