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집요한 착실함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줄곧 들어온 평가였네. 대화의 빈도나 무게는 나에 대한 감상을 좌우하지 못하였다네. 생면부지에게서 내밀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절친한 사이에서도 메워지지 않을 간극을 감지하는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지. 서운함은 성의의 부재가 아니라 기대의 무산이었네.
왜인지 쉽게 곁을 내 주지 않는, 무심함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도리어 시끄러운 환호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네. 무언(無言)의 감상을 저격한 것이려나. 실로 알 수 없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아닐까 싶었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그을리고, 먹줄이 쓸린 결대로 나무가 잘려 나가듯, 시기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눈살이 나를 임계점의 공간으로 밀어넣는 데 성공했다네. 각광을 피할 수 없다면 맞서는 수밖에 없었지.
엄격함이 무너지고, 전통이 도태되고, 체계가 와해된 곳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파헤쳤네. 기한과 목적은 중요하지 않았다네. 찾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았지만, 열망과 패기만큼은 결코 지지 않았네.
선. 어쩌면 나조차도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수세에 내몰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어. 노력을 토대로 금이 분명해지면,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리라 믿었거든.
결과는 예측 밖이었네. 그토록 갈망했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도리어 중심이 바로 서기 시작했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일함이자, 모든 것을 받아낼 수 있는 단일함.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동시에 만물을 품은 상태임을 의미한다네.
결정이 느린 것은 기준의 결여가 아니라 사안의 우선순위가 낮은 것이었네. 주장이 무른 것은 확신의 부족이 아니라 평화를 중시하는 것이었어. 설명이 멈춘 것은 소재의 결핍이 아니라 의미의 포화였네.
중요한 것은 취향의 유무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나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는지라네. 언어로 환원되지 않고, 행위로 드러나지 않고, 그럼에도 오직 나만이 감각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 그 자체 말이야. 색이 바래고, 마음이 다해도 삶은 지속되기 때문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