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청춘의 주제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했네. 외부의 기준이나 타인의 주목은 나를 움직이지 못하였지. 승부욕은 잠깐의 동기부여는 될 수 있었으나 오래 가지 못하였네. 악의(惡意)에 잠식당한 동력은 역으로 나를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라네.
욕망은 높은 수준의 자기 이해를, 도전은 결사코 무너지지 않을 확신을 필요로 했다네. 이에 의미를 덧붙이고, 이유를 찾기 위해 무의식을 파고들었네. 동일한 풍경을 공유하더라도 눈길이 머무는 자리를 포착하고자 했지. 별다른 고민 없이 착수한 작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박차를 가했다네.
완벽주의는 나의 이상이 아닌, 외려 나를 멈춰 세우는 규칙이었네. 명줄이 걸린 문제에서 신중함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지. 이는 계획성, 꼼꼼함, 성실함 등의 특성으로 발현되어 신뢰와 절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에 적합했다네.
반경이 커지는 듯해도 중심은 나 자신에 그쳤다네. 생각은 점차 정교해졌으나, 행동과는 점점 멀어졌어. 그저 몸집만 불린 채, 똑같은 자리를 선회하고 끝없이 열화할 뿐. 매일이 빈곤했지. 이루고자 하는 바가 없었으니 이루지 못한 뜻이 없었고, 따라서 후회는 존재하지 않았네. 그러나 생경한 장면도, 뜻밖의 설렘도 없었지. 완벽이라는 벽은 나를 안전히 보살폈고, 나를 완전히 가두었다네.
어중간한 의지를 바로 세우고, 부진한 실력을 단련하며 마땅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러다 문득, 나는 스스로에게 실의에 빠질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네. 노력은 계속해서 미흡함을 들추고, 나는 언제까지고 역량 미달을 체감할 테니 말이야. 설령 나의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도, 분명 또 다른 구실을 들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겠지.
선. 이는 능력에 대한 겸손이 아니었네. 스스로가 시의적절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오만이었지. 더 이상 나 자신을 감싸 줄 수가 없게 되었네.
취향이 빼곡한 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보았네. 가사라는 명확한 메시지가 없는 이 재즈는, 우리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네. 음은 불안정하고, 박자는 어긋나고, 선율은 종종 예측을 배반하지. 현장의 소리가 곧 예술적 창발이니, 애시당초 음악은 원작이라는 것이 없는 장르라네.
그럼에도 불안하지 않은 까닭은, 연주의 호흡을 신뢰하기 때문이네. 이전의 실수가 다음의 변주가 되어, 곡이라는 구조 안에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네. 정해진 악보 없이, 완성된 해석 없이, 성공이나 실패보다 지금 이 음표가 살아 숨 쉬는가를 더 중요히 여기는 것이지.
그러니 완결을 유예하고, 의미를 미루어도 괜찮다네. 불완전한 채로 시작하고, 흔들리는 상태로 이어 가며, 연주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삶으로 여겨 보아. 각색이 난무하고, 리듬이 변형되어 어설프고 휘청이더라도 연주가 계속되듯, 우리네 인생 역시 그러하다네. 다음 마디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다만 즐거울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