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동화 지도사과정이 곧 개강하는데 같이 하시지요”
“글쎄요.”
지인의 연락을 받고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사람들 앞에서면 울렁증이 있는 내가 구연동화까지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에는 관심이 많았기에 ‘구연동화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화책과 더 가까이 접할 기회도 되겠구나.’싶어 도전해보기로 다시 마음을 굳혔다.
마침 수강 중이던 글쓰기 반이 곧 휴강이었기에 조금만 부지런하면 글공부를 나름대로 계속 이어 갈 수 있을 듯도 했다. 마음속의 이런저런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수강 신청을 했다. 하지만 구연동화 수업에서 내 계산은 어이없이 무너졌다.
우리 주님은 내가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한 것을 어찌 기억하셨는지 오십 대인 내가 다섯 살 유치원생이 되게 하셨다. 선생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배꼽 인사를 하는 다섯 살 은하가 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손 유희와 노래를 따라하고 들려주시는 동화 속으로 유치하리만큼 푸욱 빠져들었다. 흰 수건으로 양 머리를 만들어 머리에 뒤집어쓴 우스꽝스런 모습에 친구들은 서로 킥킥대며 웃었다. 단풍처럼 울긋불긋 고운 색깔의 색종이로 어설픈 종이 접기를 했다.
어느덧 웃음을 잃어가던 내가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나이라는 숫자가 하나 둘 늘어가고 내 의지와 상관없던 어른이란 이름 앞에 혼자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선택과 책임감 속에 짓눌려 지냈다. 하지만 철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해맑게 소리내어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삶의 계산기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아무 계산 없이 웃고 있었다. 나의 낯선 웃음소리를 귀로 듣고 있으면서 무언가 가슴 저 밑바닥이 따뜻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충분히 소리내어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놀 수만 있는 건 아니다. 구연동화 자격증 과정이었기에 우리는 각자만의 동화를 선택해서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꿈을 가진 모과나무”를 선택했다. 여린 모과나무가 산들바람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라가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다.
나는 세 살 때부터 외할머니가 키워주셨기에 여린 모과나무가 내 모습 같았다. 모과에게 들려주는 산들바람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외할머니가 내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산들바람 할머니가 “모과야” 하고 부르면 “은하야” 하며 내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시던 외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한번 울면 수업을 따라가야 하는데 감정 정리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그래서 ‘울지 말자. 울지 말자.’ 하고 혼자 주문을 외웠다.
시험…. 정말 싫은 단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수업 마지막 날 자격증 시험에 임하는 친구들의 진지함은 내게 큰 도전이 되었다. 모두 열심히 준비했고 정말 잘했다.
두 달 남짓의 구연동화 시간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오롯이 내 안의 울림에 집중 할 수 있게 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내가 다섯살이 되어 외할머니와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