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내주신 마스크 잘 받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딸이 보낸 반가운 문자와 사진이 도착해있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딸의 손에는 눈에 익은 마스크가 들려있었다. 나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한 달 걸린다고 하더니 벌써 간 거야.”
기쁜 마음으로 문자를 쓰면서 갑자기 또 울컥하고 눈물을 쏟는다. 마스크를 보내던 그날도 그랬다.
코로나는 지구촌 곳곳에서 3차 세계대전이라 불리며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망자와 확진자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조금 수그러질 것 같던 코로나가 다시 긴장상태로 접어들자 내 마음도 다급해졌다.
딸이 미국에서 전해오는 소식 또한 암담한 이야기뿐이었다. 딸은 자상한 남편과 지혜로운 시어머니 곁에 있다. 하지만 마음에 깊은 불안감이 물밀듯이 몰려들자 ‘하루에도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곳에서 내 자식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하는 생각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덕분에 나의 컴맹과 영어 울렁증마저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식이 처할 어려움 앞에 겁을 상실한 것이다. 아직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다는 딸의 소식에 국제 우편으로 KF94 마스크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우체국을 뒤져보니 국제 우편은 사전 접수가 필요했다. 컴맹인 나는 첫 날에는 개인 인증에 막혀 실패했다. 다음날부터는 장마 전에 남편 현장 일 마무리를 도와야 했다. 딸에게 하루라도 빨리 마스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힘든 현장 일에 인터넷 접수를 며칠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현장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국제 우편 보내기에 도전을 했다.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16시간 정도의 시차가 있다. 딸이 잠자는 시간에는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기를 기다려 하루를 늦추면 주말이라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거리상 미국에 있는 딸보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가까워 모르는 것은 아들과 카톡 사진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받았다.
규정에 마스크는 한 달에 12개를 보낼 수 있다. 석 달을 모아서 36개까지 보낼 수 있고 석 달을 기다려야 다시 보낼 수 있다. 그것도 친인척이 아닌 직계가족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딸은 주민 등본상의 서류가 있지만 미국인 사위가 문제였다. 나에게는 딸의 결혼서류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딸이 사진으로 보내온 서류라도 가지고 가봐야겠다.’ 하며 우여곡절 끝에 국제우편 사전접수를 마쳤다. 접수증을 인쇄해서 손에 들고 이부자리에 누웠다. 가슴이 뛰었다. 컴맹과 영어 울렁증이 없는 사람은 이 벅찬 기분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동사무소에서 등본 한 통을 떼었다. 실명으로 구입해둔 마스크와 지인에게 부탁한 마스크까지 합해서 64개의 마스크를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다급한 마음에 36+36=64라는 나만의 셈법을 한 것이다. 규정상 마스크는 다른 물품들과 함께 보낼 수 없다. 하지만 손 편지 한 장을 몰래 상자 바닥에 밀어 넣었다. 어미의 작은 흔적이나마 외로운 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나는 우체국에 도착하자마자 우편접수 창구로 걸어갔다. 자랑스러운 사전 접수증과 마스크 상자를 씩씩하게 창구에 내밀었다. 나의 접수증을 살펴보던 직원은
“고객님! 잠깐만요.” 하며 옆자리 선배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나에게 직계가족임을 증명할 서류를 요구했다. 나는 동사무소에서 방금 출력해온 따끈따끈한 등본과 카톡으로 받은 결혼서류 사진을 건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난히 웃는 모습이 고운 사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제발….
“특급우편이 접수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보내실 때는 종이로 된 증명 서류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우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연달아 인사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머리 허연 아줌마가 눈물을 쏟자 우체국 창구 주변이 술렁거렸다. 친절한 직원도 당황한 듯 어쩔 줄을 모른다. 주체하기 힘든 갱년기의 감정 기복 탓인지, 뉴스의 정점을 찍고 있는 박원순 서울 시장의 죽음 탓인지 쏟아지는 눈물의 이유를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사위도 자식인데 증명할 서류 한 장 갖고 있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거나, 36+36=64가 되는 내 모자란 산수 실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 부족한 어미를 대신해 산 넘고 바다 건너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 손에 주어질 마스크 숫자 몇 장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손바닥만한 필터 조각이 무엇이라고. 생명이 위협받는 이국땅에서 견디고 있을 내 자식에게 어미가 겨우 해줄 수 있는 것이 손바닥만한 마스크 몇 장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어미와 자식의 관계를 서류로 증명해야 한다는 막막한 현실도 버거웠다. 서부개척시대 우편 마차도 아닌데 특급우편이 한 달이나 걸린다니.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좀 더 서둘러 보내지 못한 어미의 무지함에 속이 상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이유들에 휩싸여 쉽사리 그치지 않을 긴 울음 속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 해인에게
사랑하는 해인아!
미국생활 잘 적응하고 있지.
시어머니와 설지오의 건강도 궁금하구나.
이곳 식구들은 모두 건강하단다.
엄마가 마스크를 늦게 보내 미안해.
미국이 멀고 먼 땅이다 보니 무얼 보낸다는 걸 너무 일찍 포기하고 살았었나봐
너무 늦지 않았을지 엄마 마음은 새까맣게 타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이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 해인아!
엄마가 해니를 하늘 땅 별 땅 우주 블랙홀만큼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좋은 시간되면 다시 얼굴보자.
옛날에 엄마랑 숨바꼭질놀이 했던 것처럼 코로나랑도 숨바꼭질하듯 잘 숨어있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우리 해인이 엉덩이가 보인다.
가끔 끝이 안 보이는 터널에 서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 삶에 어려움은 항상 있었잔아.
포기하거나 낙담 하지 말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이 어려움을 잘 견뎌보자.
크고 시원시원했던 너의 밝은 웃음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것 같아 엄마도 힘이 난다.
마스크가 하루 빨리 도착하길 기도하마.
설지오와 가족들에게도 안부전해주고 모두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기도하며.
2020년 7월10일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