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의 관계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by 김은하 Mar 24. 2025


전화가 끊겼다. “나한테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는 딸의 거친 목소리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동안 빈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해가 어려웠다. 아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짐작했다. 우리의 모녀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둘 다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지쳐갔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우리의 이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임신과 육아로 치달리는 나의 엄마 역할극은 혼란스러웠다. 딸은 우유부단한 나와는 너무 다른 성격이었다. 딸의 성격은 YES와 NO가 확실했다. 딸의 키가 자랄수록 나는 점점 더 버거웠다. 딸을 키운다는 느낌보다 “내가 부모로 키워지고 있다.”라는 표현이 맞을 거다. 큰딸이라는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식이 안쓰러우면서도 편하지 않았다. 딸은 바른말이라는 표현으로 부모와 자식의 선을 아슬하게 넘나들었다.

     

나는 친정아버지와 관계가 불편했다. 그래서 남편과 딸아이의 관계에 신경을 썼다. 내가 겪은 마음의 상처를 딸에게 이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신경을 쓰는 만큼 남편과 딸의 관계는 엇나갔다. 부모로써 딸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딸이 국제결혼을 선택한 이유에는 철없는 부모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일조했을 것이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이유처럼.     


나는 딸이 미국으로 떠나고 한동안 마음이 심란했다. 눈에서 멀어져야 서로 편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펐다. 내가 미국의 딸네 집을 방문하고 딸이 일 년에 한 번 정도 다녀갔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딸은 친구 문제로 부딪치는 부모와는 연락을 끊겠다는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 했다.      


딸의 생일이 되면 문자를 보낸다. “건강해. 은하 딸로 만나서 고맙다.” 답장은 없다. 우리는 너무 다르다. 서로의 다름을 억지로 맞추어가려 애쓰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는 부모 자식의 인연 하나만으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친구 같은 딸을 자랑하는 사람이 부럽다. 친구는 잘 싸우고 화해도 잘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허락하실 자유함을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유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