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아니면 파랑보다는 보라가 좋더라
돌이켜보니, 나는 복잡한 척했던 애매한 인생이었다.
빨강 혹은 파랑보다는 두 가지가 섞인 보라가 좋았고,
대문자 T 같이 이성적이거나 혹은 대문자 F 같이 감성적인 것보다는 적당한 사람이 좋았다.
0과 100 둘 중의 하나보다는 50을 고르고 싶은 느낌이랄까.
마냥 단순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애매한 사람'보다는 '복잡한 사람'이 왠지 더 이상적인 느낌이기에, 나는 복잡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현실은 '굳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굳이'의 중요성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굳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굳이, 나의 시간을 이 일에 쓰는 것.
굳이, 그 물건을 아끼는 것.
굳이, 어딘가에 가서 그 음식을 먹는 것.
이처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그 순간의 '굳이'로 만들어지는데 말이다.
예컨대 열흘이면 시드는 꽃을 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우리는 굳이 시들어버리고 마는 꽃을 주고받는다.
그 이유는 아름다웠던 열흘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도 걱정하지 말아라.
삶에서 잠시만 아름다워도, 짧은 아름다움을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말이다.
활짝 피었든, 봉오리만 맺혔든, 꽃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든,
당신은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
굳이 누군가와 함께 하고, 굳이 무언가를 통해 행복하고, 굳이 오늘을 살아내는 것.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인생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굳이 더 나은 선택들을 하며 잘 살아내고 있다.
좀 애매하면 어떻고 좀 복잡하면 어떤가.
나는 이제야 애매하고도 복잡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무슨 색을, 왜 좋아하는가?
내가 그 색깔을 좋아하는 게 나와 닮아서인지, 아니면 닮고 싶어서인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사랑하는 그 색은 분명 당신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