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일어나는 원인이 바뀌고 계절의 변화도 느끼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이제 2년이 되어간다. 다음달이면 두 돌을 맞는 아기의 생일잔치를 간소하게 해줄 예정이다. 임신을 했을 때 막연히 상상했던 아기의 귀여움은 단편적이었다. 이제 아기의 많은 모습이 마치 햇빛을 머금은 프리즘에서 쏟아지는 빛처럼 다채롭고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돌이 다 되어갈 무렵에야 글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기는 것도.
#1. 약 2년 정도의 육아는 내가 울고 웃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이번 추석 연휴에 미뤄놨던 독서를 하다가 눈물을 쏟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소년을 추억하는 엄마의 독백 부분을 마주했을 때였다. 그녀는 소년이 아기였을 때 네가 노란 똥을 그렇게 잘 쌌다고 추억한다. 둔덕을 내려가 천변을 걸을 때에도 왜 엄마는 컴컴한 대로만 다니냐며, 햇빛이 나는 자리로 걸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이제 그녀가 햇빛 아래로 걸어다닌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조용히 예쁘게 울지 않고 으허헉 하며 와락 눈물을 터뜨려버렸다. 늦은 밤 혼자 식탁에서 읽고 있을 때여서 다행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슬프다. 그리고 너무 리얼한 이야기들은 마주할 수도 없다. 아이유가 나오는 [폭삭 속았수다]에서 동명이가 죽은 장면은 나는 그냥 다 스킵해버렸다.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 보기를 종료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도 보고싶지 않았다.
한편 운전을 하다보면 뒤에서 남편이 묻는 경우가 잦아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웃겨? 무슨 생각했어? 그럼 보통 아기 생각을 하고 있다. 참, 걔가 그 때 왜그랬지 진짜 웃기는 아기야.. 이러면서. 우리 아기만 이렇게 웃기고 재밌는 걸까? 대부분 그렇겠지. 울면서도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맞춰서 율동을 하지 않으면 못참는 아기의 모습이 그렇게 재밌고 웃음이 난다. 기저귀에 응가를 하면서도 뭉개지는 게 싫어서 엉거주춤 걸어오는 아기. 두 돌이 다 되어가는 데도 말을 거의 못하지만 의사소통의 의지만큼은 확고하고 강력해서 어린이집에서 찍혀오는 사진을 보면 주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소리지르고 있는 아기. 듣는 건 귀신같아서 내가 못찾고 있는 내 주차자리로 내 손을 이끄는 아기. 놀다가도 비행기 소리가 나면 우우우!! 소리를 지르며 베란다로 뛰어가서 손가락으로 힘차게 하늘을 가리키는 아기. 우유를 마실 때는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아기. 나가고 싶다고 기저귀 가방을 선반에서 내려서 끌고 다니는 아기.. 아기의 이런 모습을 생각하다보면 그냥 웃음이 난다.
#2. 아기는 계절을 느끼게 한다.
남편의 성이 '한'이기 때문에, 아기의 이름을 성이랑 연결해서 지어보고자 했던 나는 '한여름'이라는 이름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여름처럼 싱그럽고 생명력이 강하고 뜨거운 햇빛처럼 강렬한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는데 임신하고 10kg가 넘게 살이 찌면서, 2023년 여름은 정말 미친 듯이 더웠다. 태어나서 겪은 모든 여름 중에 가장 덥고 처지는 여름. 그래서 그 이름은 그냥 포기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외출이 일상이 된 것은 돌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가요 병에 걸린 아기는 현관 문 앞에서 징징거리기 일쑤였다. 다른 일로 징징거릴 때에도 나갈까?라는 말에 금새 헤헤거리며 우리 뒤를 쫓아다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또 나가야 시간이 잘갔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참 많이 나갔다.
아기는 야외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번쩍번쩍한 장난감이 있는 키즈카페보다 별것도 없는 풀밭의 나무들을 그렇게 신기해하면서 돌아다닌다. 신체발달은 빠른 편이어서 뛰는 속도가 엄청나다. 잘 넘어지지도 않는다. 아이와 함께 둘이 공원에 나가면 계절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한두시간이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의 공기가 달랐다. 습도와 열기가 제각각인 봄과 여름의 날들에 나는 아기와 함께 야외에 있었다. 내가 주로 실내 생활을 해왔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였다. 얼굴에는 기미가 생기고, 손과 종아리도 좀 더 탔다. 집 근처의 모든 공원을 섭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