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한 기록 #7
임신에 대한 기록 #7 아들과 딸
출산을 3일 앞두고 내 몸은 지금 릴랙신 호르몬이 지배하고 있다.
온몸의 관절이 너덜너덜해지면서 특히 손목이 매우 좋지 않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 키보드를 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체공학 키보드를 가지고 온게 불행 중 다행이다.
아들과 딸 이야기는 꼭 해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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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임신을 상상해본 적도 별로 없지만
아들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더더욱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자고 동생도 여자이고 자매애가 좋은 편이었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상하게 여동생들이랑 잘 지냈다.
일단 난 귀엽고 웃기고 예쁜 것들을 좋아하고
또 특히 여동생이 귀여우면 츤츤대는 편이다.
반면 연하의 남자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무감정으로 살아왔다.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래 친한 남동생이 거의 없는 편이다(부하면 몰라도)
그래서 아이를 낳더라도 딸 둘이 있는 가정을 막연히 상상했을 뿐
아들이 있는 이미지를 그려본 적이 없다.
아기의 성별이 밝혀졌을 때 뭉근하게 가슴이 내려앉았던 느낌은 그 때문이었을까.
'어떡하지'라는 당혹감이 나를 감쌌다.
나는 남자형제가 없어서 아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고
평소에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어린 남자 아이들에 대한 이해는 당연히 없었다.
내게 어린 남자 아이란 원숭이처럼 꺅꺅거리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에 마물고 있는
깊은 이해를 위한 복잡성 조차 결여한 생명체 정도였는데
그 씨앗이 내 자궁에 자라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출처: 픽사베이
임신을 하게 되면 성(gender)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일까
여자의 사회적 인생이 임신과 출산으로 어떻게 변경되는가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면서
나의 아가가 살아나갈 인생이 성에 의해서 많은 것이 결정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30대 중반의 인간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서 많은 부분이 결정되고 있었고
여자아이면 밝고 예쁘게
남자아이면 똑똑하고 씩씩하게
키워야지라는 고정관념도 매우 강해지게 되더라.
맘까페나 블라인드 육아 카테고리 같은 커뮤니티에서 내가 주로 찾아본 것들은
'아들' '외아들' '아들 심리' 같은 키워드였던 것 같다.
(외)아들이어서 부모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을 수 있어서 사실은 좋았다는 썰이나
남자형제와 차별받으며 자랐다는 썰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빠른 경제 성장을 하면서 구세대와 신세대의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성역할에 대한 인지부조화만큼 강렬한 테마도 없고
그 테마가 가장 빡세게 부딪히는 공간 중 하나는 결혼 시장과 육아 시장이었다.
출처: 픽사베이
확실한 건 딸을 선호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당연히 딸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누군가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라고 물으면
상관없는데 아들이면 나를 닮으면 좋겠고 딸이면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동성인데 너무 닮으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딱히 성역할에 대한 기대가 없는 터라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같은 딸이나 딸같은 아들은 좋을 것 같다.
시댁은 이미 손자가 둘이나 있어서 특별한 선호는 없었다.
아마 딸이라고 하면 신기해하셨을 것 같긴 하다.
친정은 첫 아이이기도 하고 아들이 귀한 집이라 매우 기뻐했다.
성별이 밝혀지기 전부터 아들같다고 난리를 치더니 막상 밝혀지자
아빠는 이름에라도 자기 성을 넣어달라고 졸랐고 (김인데 '금'으로)
엄마는 내가 워낙 무뚝뚝한 면이 있어서 아들이 더 잘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남편은 딸이었으면 험한 세상에 너무나 걱정인형이 되었을 것 같다며 좋아했다.
아들이라 축구를 같이 할 거라며
주말이면 둘이 놀러갈테니 너는 자유시간을 즐기라며 설레했다.
내 주변인들은 안그래도 로보트 같은 나의 성향이 아들과 함께 심화될 것이라며 재밌어했다.
나를 닮은 아들이 나오면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도 했다.
출처: 픽사베이
나에게 만약 아들과 딸의 차이가 있다면
둘째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딸이었다면 자매가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기 때문에
둘째를 망설이지 않았을텐데
지금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벌써 둘째는 없다는 생각이 강렬하다.
#아들 #딸 #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