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하고 싶은 것’ (3) 살이 남는 것

by 김피그

“밥 먹었어?”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우리의 인사말이나 일상의 가벼운 대화에서

밥은 꽤 중요한 주제가 된다.

소개팅 같은 어색한 자리에서도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만남의 장소 역시 식당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식욕에서 시작해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감정과 취향, 관계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행위다.


매일 새로운 물건을 사긴 어렵지만,

매일 최소 한 끼의 식사는 하게 된다.

먹는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주제일 것이다.

물건을 살 때,

특히 그 물건이 값어치가 나갈수록 자주 사는 것이 아니기에

결정을 내릴 때 수많은 고민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밥 먹는 건 매일 몇 번이나 먹게 되는데도

“오늘 뭐 먹지?” 는 왜 이렇게 큰 고민거리일까.


기분이 나쁘다가도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반대로 맛없는 음식을 먹었을 때 좋았던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니,

분명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다양한 감각을 채우는 주요 자극임에 분명하다.


나는 예전부터

‘아무거나 배만 채우면 되지’라는 표현을 제일 싫어했다.

웬만하면 그래도 맛있는 것, 보기 좋은 것,

나이가 들면서는 건강에 좋은 것을 챙겨 먹으려 노력했다.

배고프니 뭐라도 먹자며 한 끼를 때우는 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그걸 먹게 될 나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의 이 한 끼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끼니,

그렇다면 허투루 때울 끼니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먹는 것’ 은

각자가 생각하는 정도는 다를지언정 ‘꽤나’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중요도는 음식의 본질

—영양적 관점이나 삶의 유지 차원,

혹은 사회적 관계나 욕구의 측면—을 뛰어넘어

표현과 과시의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욕망의 표현 수단이 된 음식,

‘instagramable’이라는 힙한 단어로 표현되는

요즘의 추세가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맛집을 다니는 것이 트렌드가 된 지도 꽤 오래다.

하지만 유행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

혹은 유행하는 음식을 내 피드에 꼭 올리고 싶은 열망은

내 취향을 찾는 행위와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작정하고 맛집 투어를 계획한 어느 날.

일단 1순위 빵집에 줄을 선다.

유명하다는 것들을 잔뜩 담아 양손 무겁게 들고

2순위 빵집으로 다시 줄을 서러 가는 길.

그렇게 오늘의 계획대로 한 바퀴 돌아 집에 도착하면,

이걸 오늘내일 다 먹기엔 너무 많은 양임을 그제야 알아차린다.

더 슬픈 건, 모든 빵이 제일 맛있을 타이밍을 다 놓쳐버리고

맛없게 먹다가 결국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카페에서 이런 손님을 본 적이 있다.

티 색깔이 대비되게 우러나는 두 잔을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추천을 받은 티 두 잔을 주문하고, 예쁜 케이크 두 조각을 함께 시켰다.

티백이 진하게 우러나오길 기다리며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던 그 손님은,

모든 것을 하나도 먹지 않고 그대로 카페를 떠났다.

삼만 원 남짓 하던 그 음식들은

사진을 남기기 위한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왔고,

욕구를 충분히 달성했을 테니 행복했을 것이다.

그들의 취향은 사진을 남기는 것이었으리라 이해해야겠지.

음료와 케이크가 아까웠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내 관점에서만 판단해 버린 편협한 시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편의 제목을 ‘음식을 먹는 것’ 이 아닌

‘살이 남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식문화의 소비 그 자체로도 ‘하고 싶은 것’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먹으면서 일어나는 2차적 소비의 영역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살이 과하게 남게 되면,

결국 우리는 숙명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바로,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또 뭔가를 하고, 사고, 먹는 일이다.

우선 닭가슴살과 단백질 쉐이크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다음엔 헬스장 회원권과, 여유가 된다면 PT도 끊는다.

이번이 마지막 다이어트라며 마음을 굳게 먹고,

기능성 좋고 (이왕이면 색상도 마음에 드는) 운동복도 하나 산다.


실컷 돈 들여 먹어놓고,

더 큰돈을 들여 살을 빼고 있는 걸 보자니…

인생은 끝도 없이 돌고 도는 회전목마 같다.



그 이상의 아이러니가 있다.

모태 통통으로 태어나 단 한순간도 마름-보통이었던 적이 없는 나는,

다이어트조차도 격렬하게 하고 싶지 않다.


정말 나의 이 정신승리의 상태는 대단하다.

사실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다’ 고 하기엔 뭔가 의지가 부족해 보이고,

격하게 실천하지도 않는다.

마치 “숙제 곧 할 거야” 말하는 초등학생처럼,

평생 공염불을 외우는 중이다.


간절히 먹고 싶은 것은 없지만, 막상 먹게 되면 아무거나 잘 먹는다.

되려 너무 잘 먹은 나머지 다이어트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다이어트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나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 이 없다는 현실에서 결핍을 느끼지 않는 나는,

먹는 것에서도 욕심과 욕망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일까.

오늘은 이걸 먹어 행복하고, 내일은 저걸 먹어 맛있다고 느끼는

단순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마음으로

이 모든 욕망이 설명될 수 있는 상태가 도대체 뭘까.


나라는 사람은 세상의 유행도 따르지 않고,

내 안의 욕망도 좇지 않는다고?

욕망 없는 삶은 편하지만,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잠깐, 뭐야…

그럼 나 정말 ‘살만’ 남은 거야?


참고. 필명 김피그는 pig가 아니고 fi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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