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음… 근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래. 하고 싶은 거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나처럼 동호회나 취미활동 하는 거 내 주변에서도 다들 부러워하더라고. ‘어떻게 선생님은 그렇게 재밌게 사세요?’ 한다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인 내 친구는
비교적 명확한 출퇴근 시간과 방학 기간을 활용해
다양한 운동과 연수, 취미생활을 한다.
오랫동안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하며 직장 이외의 인간관계도 많이 만들고,
기록도 꽤 좋은 편이라 자기 삶의 활력소가 되곤 한다.
그런데 같은 직업의 동료 선생님들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니,
시간 관리가 자유롭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틈을 내고 시간을 쪼개어 어떻게든 할 테니,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시간의 유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던 어느 날, 또 다른 지인의 삶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 만나 이제는 세 자녀의 아버지가 된 오랜 지인이 있다.
능력이 출중해서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을 옮겨 다니며
커리어적으로 명확한 삶을 살고,
근래 드물게 결혼도 일찍, 아이도 일찍 낳아
벌써 입시를 앞둔 학부형이기도 하다.
그에게 물었다.
“오빠는 요새 시간이 나면 뭐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천장 봐.”
그 말을 하는 표정에서 단번에 읽을 수 있었다.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젊은 시절의 반짝임을 잃은,
허무함이 가득한 눈빛을.
이룬 것이 많으니 잠시 쉬어 갈 수도 있지.
어찌 매 순간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겠냐마는,
달려가는 현실의 속도에 올라탔을 뿐,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볼 여유를 잃은 평범한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아, 나만 그런 건 아니었어.’
문득, 나 같은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서
조금의 안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소속감(?)이 들었다.
비록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각자 삶의 위치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며 사는 사람들.
글쎄,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게 ‘진짜 어른’ 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일상에 찌들어 새로운 뭔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어른,
오랜만에 시간이 남아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어른,
해야 할 것들에 둘러싸여 정작 하고 싶은 것은 사라진 불쌍한 어른.
언제 우리는 이렇게 심심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어릴 적 우리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 때는 과학자나 의사, 그 이후 세대는 공무원이나 아이돌,
요새는 인플루언서 (혹은 건물주)가 꿈이라고 말한다 하니,
우리는 이 질문에서 직업을 떠올리곤 한다.
‘하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서도 꿈과 희망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과 일을 제외한 할 것들만 생각하니
어쩌면, 어릴 적 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일하는 어른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일이 하고 싶다’ 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표현이 되어버린 걸지도.
하지만 삶에서 잠자는 시간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일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반대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요새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혹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하고 싶은 일’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 왠지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리석지만 은근히 위로가 되는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자영업 혹은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일을 하고 있다.
비교적 미래에 하고자 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직업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나 스스로의 방향성과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회사를 다니면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곤 하지만,
마치 잘 짜인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탄 듯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나아가고는 있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비록 그 삶의 방향성이 나의 의지였는지는 지금은 논하지 않기로 하자.
방향성이란 것은 지나고 나서야 옳은 방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니,
회사원으로서의 삶과 그 방향성이 내 의지였느냐 아니었느냐
판단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네가 원하는 대로 하니 정말로 부럽다.”
그러나 저 깊은 내면의 나는 이렇게 조용히 대답한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달리 생각할 일이다.
직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나야말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가 아닌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했지만,
어느 순간 이 일을 평생 하고 있을 나의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퇴사를 결정하고 회사 임원진과 퇴사 면담을 하는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지금 관두면 학교에서부터 배웠던 전공, 일. 너의 10년의 커리어가 사라지는 건데 괜찮겠어?”
한숨 생각한 뒤,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그렇지만 내가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새 직업을 택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이 일이 재미있으니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
퇴사 면담을 마치고 생각한 것이 있다.
10년의 커리어.
그렇다면 나는 10년마다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요즘, 모든 것은 급변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이 나의 10년의 커리어가 사라지는 순간이라면,
내 다음 일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날이 오겠구나.
이렇게 나는 일에 대한 ‘10년 주기설’을 주창하게 된다.
여자의 평균수명은 90세에 다다르고,
평생직장이 있다 한들 60이면 정년을 맞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은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곤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나긴 인생,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세상에 태어나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면,
직업도 10년에 한 번씩 바꿔보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지금 나는 두 번째 10년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물론 첫 번째 10년을 맞았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만큼의 열정과 패기는 사라졌고,
그때보다 좀 더 현실적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세 번째 10년을 위한 과정과 결정이 조금은 더디기도 하지만,
작년부터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기도 했다.
어, 왜 지금껏 깨닫지 못했을까.
나, 일과 관련되어 이미 또다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너의 꿈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갖고 싶은 것이든, 먹고 싶은 것이든,
혹은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가 되었든 간에.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발견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