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도파민 역치가 낮은 것 같아. 학창 시절 때 공부 잘했던 애들이 보통 그렇더라. 자제력이 높은 거지. 크게 흥분하거나 들뜨지도 않고, 마치 마시멜로를 내일 두 개 준다고 하면 무던하게 오늘을 잘 참는 성향이랄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공부하기 싫거나 머리를 식힐 때 접하던 것들
—게임, 만화책, 아이돌—
그 모든 것들에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컴퓨터 중독은커녕 그 흔한 만화책 한 권 빌려 본 적이 없고,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노래는 있었지만
팬클럽 활동? 음반이나 잡지를 사 본 적도 없다.
(그 시절은 잡지에 실린 아이돌 화보를 가위로 잘라 모으던 시절이었다)
딱히 일탈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그냥 공부만 하다 보니 비교적 성적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보다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도파민 역치가 낮다는 건 작은 자극에도 도파민이 쉽게 분비되거나,
뇌가 그 자극을 보상으로 쉽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역치가 높은 사람은 자극을 더 강하게 추구하고 변동이 큰 보상 구조를 가졌다면,
역치가 낮은 사람은 안정적이고 절제된 쾌감의 구조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즉각적인 쾌감보다 장기적인 보상에도 반응하도록 뇌가 훈련되어 있기에
효율적인 도파민 시스템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감정적 진폭이 낮은 삶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도파민의 역치가 낮은 것과 도파민의 활성이 낮은 것.
이 둘은 과연 구분할 수 있는 상태일까?
역치가 낮다는 건
작은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이고,
조용한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절제된 삶의 모습이다.
반면 활성이 낮다는 건
도파민과 그에 따른 보상 시스템 자체가 무뎌져 버려서 즐거움이 결핍되고,
의지도 기력도 감동도 없는 상태다.
감정의 진폭이 낮은 사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아 무던하지만,
그 무던함이 점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이어진다면…
의욕과 동기가 높아질 일이 점점 없어지고,
결국 인생의 활력과 에너지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증상 아닌가?
우울증이랑 다를 바가 뭐지.
하고 싶은 일이 없다지만 우울하진 않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상황을 살펴볼수록 우울증을 설명하는 과정과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끝없는 안정감과 우울함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서 종종 혼동되는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러한 상태를 ‘공허하다’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허하다’는 단어로 이 감정의 존재를 ‘무無’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면,
나는 나의 상태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 잔잔한 리듬의 실마리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어떻게든 붙잡아야지.
그게 우울과 공허, 평온과 안정 사이에서 나를 구분 짓는 유일한 감각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