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뇌와 우주의 리듬에 대하여

by 김피그

지금의 나에게

가벼운 우울감이 공존하는 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변화가 적어서

되려 안정적이라고 느껴지기 쉽고,

그런 안정성을 깨기가 어려워지면서

점점 더 우울함으로 빠져들곤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가 이상한 건지, 문제인 건지,

괜찮은 건지조차 파악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평온하다.


자연계의 에너지인 엔트로피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

모든 자연 현상은 에너지의 흩어짐과 무질서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데,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마음이

안정으로 침잠한다는 것이 사뭇 이상하게 느껴졌다.



얼음은 녹아 물이 되고,

방 한 구석에 뿌린 향수는 전체로 퍼져 나간다.

언뜻 보면 질서를 잃고 분산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안정된 평형에 이르는 과정이다.


향수를 뿌린 공간이 닫힌 방이라면,

향수 분자는 공기를 타고 방 안을 고르게 채우며 이동할 것이다.

흩어짐 속에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

그러나 닫힌 방의 문이 열리면 향수 분자는 먼 여행을 떠난다.

밀도가 낮아지며 향을 느끼기 어려워지겠지만,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우울한 마음은 닫힌 방과 같다.

외부의 자극도, 내면의 변화도 없이

기존에 존재하는 감정들이 순환하다가 점차 질서를 이룬다.

평형 상태를 이룬 방 안은 고요하지만,

감정의 엔트로피가 지나치게 낮아진 나머지

평형에 갇혀버리고 만다.

문틈 사이로 빛과 바람이 흘러들어오면 좋겠지만,

변화의 한 줄기가 버거워 그 문을 열고 싶지 않다면…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방문을 열어야 할 당위성이란 게 존재할까?


고요한 우울의 평형을 깨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닫는 건

어쩌면 자기 방어이자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자극에 압도당할 만큼 피로해진 마음을 쉬게 하려면,

이 문을 열지 않는 게 최선일 테니까.

마치 겨울의 나무들처럼,

무성했던 푸른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남긴 채 긴 겨울의 쉼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닫힌 문을 열어야만 한다고 강요하지 마.

대신 충분히 쉬고,

봄의 계절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준비를 하는 거야.



정체된 평형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또한 자연이다.

시간의 흐름이 필연적이듯,

언젠가 다시 열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닫힌 문은 꼭 박차고 부숴야만 열리는 건 아니니까.

아주 작은 틈새로 미세하게

바깥공기가 스며드는 정도면 충분할 거다.


단지 내 안에서 변화를 허락할 준비가 되었을 때,

스스로 문을 여는 용기를 잃진 말아야 한다.

방문을 열어야 할 당위성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복귀로 생각할 일이다.




뜨겁게 빛나는 별은 세상에 자기 존재를 증명하듯 밝게 타오른다.

더욱 빛을 내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발산하는 별은

그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별은 스스로의 무게에 무너져 빛을 삼켜버리고,

마치 죽은 별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린다.

블랙홀은 더 이상 빛나지도 살아있지도 않아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시간과 빛이 뒤틀리며

보이지 않는 질서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삼키는 듯한 내부에서는

또 다른 별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어쩌면 삶이란 건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는 우주의 리듬일지도 모른다.

닫힘은 언제나 열림을 위한 준비이듯,

열림은 언젠가 다시 닫힘으로 돌아간다.

빛을 잃은 별도 결국,

다시 빛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우울한 감정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고립이 아닌

대자연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멋지지 않은가.



지난 장에서 도파민과 우울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면,

이번엔 그 감정의 흐름을

자연과 우주의 리듬 속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뇌 속의 작은 블랙홀이

모든 감정과 욕구를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외부의 자극에 무의미하게 반응하지만,

이건 마치 닫힌 방과 같은 뇌가 질서를 회복하는 중이다.

감정의 밀도는 무게가 되고, 무게는 다시 빛이 된다.

뇌가 안정을 찾고 충분히 회복한다면,

비로소 사소한 일에도 설렘이 깃들며 다시 열릴 것이다.


언제나 그렇게, 새로운 별이 태어나듯이.

닫힌 별도, 결국 빛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


오늘도 고요함 속에서 천천히, 다시 태어날 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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