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그러니까 현충일에 나름 당장 할 수 있는 애국을 해보겠다고 헌혈의 집에 갔었다. 몇 년 만이었다. 그 몇 년 동안 약간의 집착을 가미해 타투에 흥미를 두었던 터라 가지 못했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헌혈 전 상담을 받는데 복용 중인 정신과 약이 몇 알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루에 5알을 복용하고 있다 대답했고 그에 돌아온 답변은 "죄송하지만 어려우세요"였다. 물론 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권장하길 정신과 처방약을 3알 이상 복용 중이면 헌혈은 제한한다고 한다. 아쉽지만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며 헌혈의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정말 좋았다. 아쉬움이 서러움으로 커져, 애초에 아침과 저녁, 취침 전으로 8알 정도 복용하던 걸 열심히 줄이고 줄여 여기까지 온 건데도 갈 길은 남아있구나 한숨을 여러 번 쉬었다. 솔직히 눈물도 좀 고였다. 코끝이 찡했다. 내리쬐는 6월의 햇빛이 내 코끝에 모여드는 것만 같았다.
엊그제 7월 상담일이라 병원에 갔는데 약을 1알 더 줄일 수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 지난 글에 쓴 내용들을 이야기했는데 정말 반가워하셨다. 불안하고 우울한 자신을 마주 보는 일, 그걸 해내면 다 해낸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선생님은 늘 상담이 끝날 때면 말씀하신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여기까지 정말 잘 오셨어요." 나의 우울과 불안은 이렇다. 더 나아갈 수 없도록 내려오는 차단기였다가도 규칙 없는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면 다시 올라간다. 길은 안전하니 나아가도 좋다고.
밤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 생각이 많아진다. 밤은 생각을 하라고 있는 시간인 것만 같다. 특히 자려고 누웠을 때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은 모든 곳이 될 수 있다. 어릴 적 살았던 집의 부엌이 되기도 하고 도어락이 흔하지 않던 시절, 열쇠가 없어 책가방을 멘 채 기대서 있던 대문이 되기도 한다. 굿하는 날에 일손을 돕는 엄마를 따라갔던 무당집, 아빠의 투망에서 피라미를 풀어내던 홍천강 자갈밭, 지금까지도 서로 가장 친하다 말하는 친구의 인라인스케이트 한쪽을 빌려 신고 어설프게 누비던 골목 사이 공터. 또는 가본 적 없는 곳. 우주. 처해본 적 없는 상황. 우주복 없이도 멀쩡하게 유영하기. 혹은 세상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투명한 나.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상황도 그릴 수 있다. 왼쪽 눈 옆에 흉터가 생기기 전의 나, 왼손 손가락 뼈가 반쯤 부러지기 전의 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전의 나. 생각이 이어지면 우울은 몸을 키운다. 몸을 키운 우울은 잠을 밀어내거나, 미처 밀어내지 못한 잠의 표면에 악몽의 파편이 되어 박힌다. 그렇게 일그러진 잠이 온전한 잠보다 훨씬 많다.
최근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앓고 있는 것들이나, 덜 앓기 위한 일들에 관한 것이다. 이쯤 되면 혼자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 우울하게 사는 이야기라고 제목을 바꿔야 하는 건가 싶지만 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물론, 혼자가 다 우울하지는 않다. 오히려 혼자인 시간에 우울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도 종종 그렇다. 나는 우울하다고 해서 억지로 활기가 생길만한 걸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여력도 기분의 부재가 우울이기 때문이다. 우울하면 우울한 채로 그저 내버려 둔다. 그럴 때면 심해어가 돼서 내 우울의 가장 밑바닥, 빛이 들지 않고 압력이 강해 짓눌리지만 손도 눈도 닿지 않아 깨끗한 상태에 닿아버린다. 그 뒤에 힘을 빼면 다시 올라올 수 있다. 내 마음의 심해어가 된 내가 가닿은, 밑바닥이라고 표현하는 그 무언가가 나를 다시 밀어내는 것이다. 이런 시간은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필요하다. 아마 모두 그럴 것이다. 모두는 모두인만큼 혼자가 있어야 한다.